1. 이번 주부터 8월 중순까지 시카고에서 지내게 되었다. 시카고와 그 근교에 관심이 가는 영화관이 두 개 있다. 대학 영화관들도 멋진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지만 여름 방학 동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1) Gene Siskel Film Center : 시카고에서 가장 자주 찾게 될 영화관. 시카고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무척 좋고 명실상부 시카고 '예술'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영화관이다. 대략 한 달 간격으로 주제를 잡아 기획전을 하며 미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해외 영화들이나 새롭게 복원이 이루어진 영화의 소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번 달의 기획전은 리나 베르트뮐러, 다음 달은 장 피에르 멜빌(!). 그런데 다음 달 중순에 3주 가량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 속이 쓰리다. 

2) Music Box Theater : 진 시스켈 필름 센터가 현재 시카고를 이끌어간다면 이쪽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관. 그래서 누아르 시티: 시카고 같은 영화제를 주관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무성 영화를 소개하는 기획을 지속하는 점도 어울린다. 다만 단기간에 집중하여 기획전을 진행하기 보다는 몇 달에 걸쳐 드문드문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많아 조금은 정리가 두서없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의외의 발견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2. 집에서는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보지만 여름 동안은 그게 불가능하여 이번 기회에 스트리밍 서비스에 친숙해져 볼 생각이다. 어제는 〈제 3의 사나이 (The Third Man, 1949)〉을 보았는데 과시적일 뿐 효과적이지 못한 테크닉,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할 뿐 아니라 일관성마저 없어 보이는 인물들, '주제 의식'을 강조하려는 앞뒤가 맞지 않는 각본과 대사 등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기가 막히게 멋진 마지막 씬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었는데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인지 의아하다. 

3. 시카고에 머무르는 동안은 손에 넣은 타이틀 정리는 집에 가는 날 (일주일에 한 번씩 학업과 관련된 이유로 학교를 방문해야 한다) 포스팅할 계획이다. 

4. 덕 라이먼 감독의 〈벽 (The Wall, 2017)〉을 보았다. 이라크 전이 정리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적 저격수에 의해 부상을 당하고 허물어져 가는 벽 뒤에 고립된 미군 병사(애런 테일러-존슨 분)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노획힌 무전기를 이용해 말을 걸어오는 적 저격수와 주인공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데,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대화가 전개되는 양상이 흥미롭지 못하고 주인공이나 적 저격수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 80여분의 짧은 영화인데도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주변 지형이나 사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영화라면 어땠을까? 

5. 집을 떠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브뤼즈에서 (In Bruges, 2006)〉는 섣부르지만 올해 최고의 '기대 이상의 영화'로 꼽고 싶을 정도. 블랙 코미디로 알고 보았는데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틀린 말은 아닌데 생각지도 않았던 강직함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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