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의식 (La cérémonie, 1995; 클로드 샤브롤)]의 클라이막스는 "부르주아는 죽어야 한다"는 선언과도 같다. 하녀와 부르주아가 갈등을 겪다가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는 영화들은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부르주아를 향한 '반란'에 최소한의 정당성이라도 부여하고자 노력하는 반면, 이 영화의 를리브르 가족은 딱히 잘못이라 할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부르주아 계급에 속했다는 이유로 죽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영화에 호감을 품기 어렵다. 하나의 메세지로 갈무리되는 영화란 따분하고 빈곤하다. [의식]은 그런 관점에서 좋아하기 힘든 영화여야 한다. 특히 그 핵심적인 선언에 도무지 공감도, 카타르시스도, 무게감도, 충격도 느낄 수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영화 전반의 클로드 샤브롤의 연출력이야 대단하지만 계급적 구도를 명확히 하거나 그 중 한쪽에 동정을 표하고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활용되고 있어 사뭇 꺼림칙하다. 대표적으로 소피가 문맹임을 드러내는 방식은 대단히 교묘하고 세련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결과적으로 소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시선, 그녀의 절박한 목소리, 그리고 이전에 깔아둔 복선을 관객이 복기하게 함으로써 소피의 지난 행동 전체를 되새기게 하는 기법은 소피에 대한 감정 이입(과 소피가 어려움을 겪게 만든 부르주아에 대한 적개심)을 유도한다. 사실 를리브르 부인은 그저 쇼핑 거리를 종이에 적어 부탁했을 뿐인데.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메세지로 수렴되기 어려운 트릭스터, 잔느의 존재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온전히 연기자 이자벨 위페르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 내에서 지속적으로 잔느마저도 부르주아를 갈망하는 프롤레타리아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느껴지며, 결과적으로 이는 마지막의 '천벌'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페르는 이 캐릭터를 몇 가지 틀로 설명하려는 시도 따위는 개의치도 않겠다는 듯, 잔느라는 이상한 캐릭터에게 생동감을 부여하여 요체를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일관성을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지점에서 [피아니스트 (La Pianiste, 2001; 미카엘 하네케)]와 [그녀 (Elle, 2016; 파울 페르후번)]이 떠오른다. ) 나는 이 영화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인물 소피마저도 잔느와 함께 있는 장면들에서 잔느의 행동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입체감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위페르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이 정도까지 연기를 통해 한 인물을 넘어 영화 전체를 휘어잡고 흔들어 그 구도를 흐트러뜨리고 모호한 깊이를 부여할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다.
인물 설정이나 플롯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샤브롤의 연출력 또한 대단했는데, 인물들의 진면모를 아주 조금씩 풀어 나가는 방식이나 불안을 이야기에 침투시키는 솜씨,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내는 파국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나치게 명징한 메세지만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두 가지에 관심이 간다. 첫번째는 계급 갈등보다는 인물들의 이상 심리에 집중했다는 루스 랜들의 원작 소설이며, 두번째는 샤브롤의 다른 영화들이다. 특히 부르주아적이라며 욕먹는 후기 작품들이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