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시네마테크에서 Kino Lorber가 작년에 복원한 [Beggars of Life (1928; 윌리엄 A. 웰먼)]을 상영해주었다. 이 작품은 여러 영화 정보 웹사이트들에 상영 시간이 100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Kino Lorber에서 복원한 버전은 81분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이 영화는 무성 영화로 만들어졌으나, 최초의 유성 영화 [The Jazz Singer (1927; 앨런 크로스랜드)]의 등장으로 인해 파라마운트 측은 대화 장면을 추가하기를 원했고, 결국 19분의 대화와 노래 장면이 더해져 100분 버전으로 개봉하였다. IMDB에 따르면 감독 윌리엄 A. 웰먼과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모두 이 유성 부분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나 Kino Lorber는 유성 부분이 빠진 81분 버전을 복원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용 가능한 유일한 판본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화 장면은 영화가 완성된 이후 억지로 추가한 것이기에 누락되어도 전혀 어색하지는 않았다. 영화는 '소녀' (루이스 브룩스 분)가 그녀를 강간하려는 양아버지를 살해한 후 우연히 만난 떠돌이 '소년' (리처드 알렌 분)과 함께 도피하는 이야기이다. ([설리번의 여행 (Sullivan's Travels, 1941; 프레스톤 스터지스)]이 연상되는 부분이 많으며 실제로 [설리번의 여행]은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부랑자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소녀가 소년의 도움을 받으며 고향을 벗어나는 전반부는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소년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이미 살인이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 후 소녀가 범죄를 저지른 연유를 설명하는 부분을 오버랩으로 처리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할, 소녀가 머뭇거리다 뛰어서 기차에 오르는 장면이나 건초 더미 속에서 밤을 보내는 장면도 좋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부랑자 무리에 합류하여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오클라호마 레드' (월러스 비어리 분)와 만난 뒤로부터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이후 소년과 소녀의 비중은 급격히 사라지며, 오클라호마 레드가 이끄는 부랑자 무리가 벌이는 연극적인 재판이나 경찰의 추적 과정 등은 이입하며 재미를 느끼기엔 너무 낭만화되어 있었다. 조금 더 부랑자들의 어두운 면들을 끌어냈더라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라면 보다 소년과 소녀의 여정에 집중했더라면 더 나은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나마 선과 악의 측면을 애매하게 모두 갖고 있는 오클라호마 레드의 묘사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긴 하다.
그래서 대화 장면이 누락된 것이 아쉽다. 만든 이들이 선호한 '완성도 높은' 81분 버전보다도 무성 영화가 유성 영화로 전환되는 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대화나 노래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삽입하려 한 시도를 볼 수 있는 100분 판본이 (비록 성공적이지 않았을지라도) 현대의 관객인 나에게는 더 볼만한 구석이 많았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Kino Lorber에서 블루레이로도 출시했으며 자막이 없긴 하지만 무성 영화 부분만을 수록하고 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유성 영화 부분을 부가 영상으로도 안 넣어준 결정은 무척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