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뜸하다. 짧게 여행도 다녀왔고 할 일도 많다. 그래도 영화는 꾸준히 보고 있다.


 

[발데즈가 온다 (Valdez is Coming, 1971; 에드윈 쉐린)] (리전A 미국 Kino Lorber 블루레이)

엘모어 레너드 원작의 서부극. 늙고 지친 멕시코계 치안관 발데즈(버트 랭카스터)는 우연히 총격전에 말려들어 지역을 주름잡는 농장주 태너 일당이 쫓던 무고한 이를 죽이고 만다. 죄책감을 느끼고 죽은 이의 아파치족 아내에게 조의금이라도 마련해주고자 태너를 찾아가 100 달러를 부탁하지만 되려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묶여 황야로 쫓겨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과거 몸담았던 기병대 옷을 입고 태너의 부하와 대결하여, 목숨만 부지한 그에게 돌아가 "발데즈가 오고 있다"고 전하게 한다. 

기대했던 것처럼 각본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대사가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허투른 구석이 없다. "100 dollar" 라는 단어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 주인공 발데즈나 태너는 물론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퇴장할 것 같은 발데즈의 친구나 태너의 부하 엘 세군도마저도 계속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며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 움직인다. 게다가 (이제는 말하기도 지치지만)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서부의 '랜드스케이프'를 여느 고전기 서부극 못지 않게 담아낸다. 발데즈는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면서 숫적 우위를 가진 태너 일행을 고산 지대로 유인하는데, 황야부터 눈덮인 산까지 모두 등장하는 풍경이 대단하다. 특히 부옇게 안개낀 숲으로 태너 일행이 들어가는 장면 같은 건 숨막히게 아름답던데. 나는 대체 자브리스키 포인트의 뒤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같은 이 곳이 대체 어딜까 머리를 막 굴려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국이 아닌 스페인이었다, 하하. 동시 상영(Double Feature)을 한다면 [총격 (The Shooting, 1966; 몬티 헬먼)]과 짝을 지워보고 싶다.


[블루 칼라 (Blue Collar, 1978; 폴 슈레이더)] (리전B 영국 Powerhouse Films 블루레이)

한국에서 얼마전 개봉한 [염력 (2018; 연상호)]가 혹평 속에 부진한 흥행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안다. 보지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장르 영화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던데, 나는 잘 만든 장르 영화라면 오히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더 나은 도구라 믿는다. 사회 비판이라는 하나의 메세지에 환원되지 않으려는 자생력이 되려 사회를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케 하기 때문이다. 그 모범 사례가 바로 [블루 칼라]이다. 거의 예언과도 같은 이 영화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을 배경으로 (아직 미국 자동차 산업이 붕괴하기 전이다) 자동차 노조에 속한 친구 근로자 세 명이 정작 노동자들의 권익에는 무관심한 노조 사무실 금고를 터는 일종의 하이스트 영화다. 여기에는 노동 여건, 노조의 역할, 노사문제, 전과자에 대한 편견, 인종 갈등, 세금 문제, 심지어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들어 있는 사회 비판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영화지만 어디까지나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를 보장하는데 충실하기에 조금도 메시지에 속박되어 있다 느껴지지 않는다. 음, 마지막 장면은 조금 '의미심장'하긴 했다. 사회 비판적 요소가 놀랄만큼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그 어떤 단정적인 해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조지 A. 로메로)]과 함께 본다면 어떨까.


[Raw (Grave, 2016; 줄리아 뒤쿠르노)] (넷플릭스 스트리밍)

채식주의자로 키워져 왔지만 수의학교에 들어가 신입생 신고식 과정에서 강제로 고기를 먹게 된 후 날고기의 맛에 눈을 뜨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 [캐리 (Carrie, 1976; 브라이언 드 팔마]를 필두로 숱하게 그려져 온 소재는 새로울 게 없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각성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담아내는 방식. 줄리아 뒤쿠르노는 선을 넘은 후를 과격하게 그려내는 것보다 망설이면서도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선을 넘어서는 과정 자체가 훨씬 관객의 긴장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특히 음악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정적인 롱테이크로 찍은, 처음 인육을 먹기까지의 긴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게다가 생살의 질감과 이를 씹는 모습 역시 지독하다 싶을만큼 생생하게 그려내는 멋진 공포 영화. 조금 뻔하지만 [델마 (Thelma, 2017; 요아킴 트리에)]와 함께 미국에 2017년에 소개된 독특한 유럽 성장 공포 영화로 묶어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소녀의 숨겨진 비밀과 성장을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고, 두 작품 모두 두 여성의 관계가 중요하며, 둘 다 결말을 맺는 방식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으며, 생살이나 머리카락 등의 질감을 스크린 너머로 전달하는데 탁원할 재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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