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영화를 이제야 봤을꼬? 어쨌든 집에 블루레이만 사둔 채로 다른 영화들에 밀려 방치되고 있다가 [A Quiet Place (2018; 존 크라신스키)]를 만족스럽게 관람하고 나서 동시대 공포 영화가 더 보고 싶어져서 바로 감상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것이 따라온다 (It Follows, 2014; 데이빗 로버트 미첼)] 블루레이가 발매되던 시기에는 아직 공포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었고 (그러고 보면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본 장르는 공포 영화가 아닐까) 인제 와서야 이 영화를 보며 가깝게는 존 카펜터 영화들, 멀게는 [Cat People (1942; 자크 투르네르)]의 흔적까지 느끼며 감상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제야 본 게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그것이 따라온다]가 [A Quiet Place]을 비롯하여 최근의 인상적인 공포 영화들과 공유하는 큰 장점은 하나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지독히도 집요하게 활용한다는 점. 그게 [A Quiet Place]에서는 소리에 반응하는 괴물이라면 [그것이 따라온다]에서는 느리지만 진득하니 인물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누군가이다. 이 설정을 기본으로 깔고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정황들을 긴장감 있게 묘사하고 위험에 처한 인물들이 여기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따라온다]는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영화 중에서도 최상급 영화 중 한편으로 꼽고 싶다. 먼저, 존 카펜터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시네마스코프의 활용이 그러한데, 앞서 언급한 누군가를 무심하게 프레임의 한구석에 들이미는 솜씨라거나, 집착적으로 담아내는 (비)대칭 구도, 적막함과 고독을 표현하는 방식, 시네마스코프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액션 연출 등이 대단히 세련됐다.
두 번째 장점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내 얘기를 좀 하면, 나는 희생자가 발생하는 영화의 경우 등장 인물들에게서 호감을 품을 구석을 찾을 수 없다면, 별다른 서스펜스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관심을 잃기가 십상인 사람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그 정도가 심해서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나 싶을 정도. 그래서 카펜터 영화를 유독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인지가 허용하는 한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서로를 위해주는 친절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디트로이트라는 배경과 성인 보호자의 부재(不在)는 일종의 유사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낸 등장 인물들에게 더욱 애틋한 감정을 품게 한다. 그렇다고 마냥 순수하고 착하기만 한 인물들은 당연히 아니고 또 나름대로의 욕망을 각자 품고 있고 이로 인해 유발되는 긴장 관계 또한 흥미롭다. 당연히 이들의 운명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볼 수밖에.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1) 클라이막스가 벌어지는 장소까지 이동할 때의 건물들 풍경. 그냥 미국의 교외에서 흔히 볼 법한 주거 단지인데 이토록 음울할 수가 없다. 데이빗 로버트 미첼은 디트로이트라는 공간이 주는 인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2) 주인공 제이가 책임감과 죄책감 등이 뒤섞인 기분으로 그동안 결사적으로 피해오던 '그것'을 쫓아 달려가는 비장하고도 뭉클한 순간. 이 전까지도 마구마구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여기서 결정적으로 녹다운됐다.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차기작 [Under the Silver Lake (2018)]이 6월 개봉 예정이다. 예고편을 보았는데 여전히 시네마스코프의 활용은 재미있어 보이고, 수영장 참 좋아한다 싶고, 음악은 같은 사람이 맡았던데 정말 좋았던 [그것이 따라온다]와 달리 아직은 귀에 안 들어오고, 140분이라는 상영 시간은 좀 불안하고 그렇다. 언제까지고 디트로이트 영화만 찍을 수는 없겠지만 배경이 LA라는 점과 네오-누아르 겸 코미디 영화라는 점도 음. [그것이 따라 온다]의 진지함이 좋았던 터라. 이렇게 써놓으면 우려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기대를 꽤 많이 하고 있다.
아참, 다음 주는 진짜 바쁠거라 이번 주의 영화 시리즈는 한 주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