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도 끝나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그동안 벼르던 영화 [인의 없는 전쟁 (仁義なき戦い, 1973; 후카사쿠 킨지)] 를 보았는데,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시리즈 3편까지 내리 봤다.

악인들이 판치는 영화들은, 전형적인 선역을 내세우는 영화를 의식하면서 우리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표출하다가 되려 후진 영화가 되는 걸 종종 봤는데, 후카사쿠 킨지의 이 연작은 그럴 시간 따위 부족하다는 듯 내달린다. 시작부터 군중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엄청난 아수라장, 아니 아비규환을 보여주며 기선을 제압하고 시작하더니 박력과 현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들은 물론이오, 좁은 공간에 바글바글 모여 모두가 다른 꿍꿍이를 품은 체 겉으로는 예의와 체면을 차리려 하는 야마모리회의 회합 장면 같은 건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게다가 70년대 일본의 연작 영화라고 하면, 처음에는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날 선 에너지를 뿜어내다가도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초기작의 성공에 안주하여 안일해지거나, 연작 중의 영화들 사이에 퀄리티가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은데, 2년간 다섯 편을 만들고 리부트 작이라고 하는 "신 인의 없는 전쟁" 시리즈까지 합하면 4년간 여덟 편을 만들었음에도 이제 3편까지 보았지만 조금도 초심을 잃지 않아 감격스럽다. 이런 건 감독 한 명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유서 깊은 일본 스튜디오 시스템의 마지막 불꽃 같아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이렇게 된 김에 이번 주에 8편까지 내달려 주리라.

아참, 야마모리 놈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 쌓였다. 

덧) 당시에도 그렇고 한국 웹에 있는 영화 설명 같은 걸 봐도 히로노 쇼조는 다른 야쿠자들과는 달리 의리가 있는 인물로 받아 들여지는 것 같은데 보면 이놈도 별 다를 바 없는데 왜 그런 식으로 생각되는지 좀 궁금하다. 전략 세우는 머리가 없어서 뒷통수 맞는 일이 많을 뿐이지, 결국 배신 때릴 거 다 때리고 음모 꾸밀 거 다 꾸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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