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The Yakuza, 1974; 시드니 폴락)]의 첫 장면을 보며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왠 야쿠자의 명예와 신의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가 하면 슈레이더 형제의 멱살을 잡고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봤느냐고 묻고 싶어지는 기괴한 포즈로 인사를 나누는 두 명의 야쿠자가 등장하는 오프닝부터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야쿠자의 종주국 일본에서는 이미 [인의 없는 전쟁 (仁義なき戦い, 1973; 후카사쿠 긴지)]를 시작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에도 비교할 수 있는 '실록물'이 야쿠자 영화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시점이라 더욱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마냥 철지난 일뽕 영화로 치부할 수가 없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최상급 임협 영화에서나 볼 법한 다다미 칼싸움 장면을 보여주는데, 서구인의 시선에서 피상적으로 이해한 일본 문화에 대한 매혹이 그 원동력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나 싶다. 게다가 결말에 이르면 음, 그냥 신기한 동양 문화에 대한 백인의 코스프레로 여길 수만은 없는 구석이 있다. 

이 판타지 야쿠자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실록물 이전 일본 임협 영화의 대표적인 배우 중 하나인 타카쿠라 켄과 복잡 미묘한 관계를 맺는 로버트 미첨의 존재는 가히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 도쿄의 뒷골목을 거닐며 자그만 신사의 도리이에 몸을 기대고 타카쿠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에 이르면, 미첨이 이 이질적인 세계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들어와 있는가 감탄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연기톤도 완전히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1955; 찰스 로튼)]에서도 미첨은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화적인 이야기에 묘한 핍진성을 부여하는 존재였다. (한편으로 어떤 시점에는 리 마빈과 로버트 알드리치의 조합으로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는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겠지만 어떤 영화였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리 마빈도 좋지만 미첨과는 이미지가 또 많이 다른 배우라.) 클라이막스의 다다미 칼싸움 장면에서 타카쿠라(일본도)와 미첨(총)의 공간이 분리되어 교차 편집 형태로 액션을 보여줄 때는 일본도 액션에 비해 총 액션 장면이 동선도 명확하지 않고 상대하는 적도 알기 어려워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투를 벌인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순간 전성기 일본 스튜디오 영화에 하드보일드 탐정 내지는 서부극의 보안관이 함께 하는 듯한 기가 막힌 체험을 할 수 있다. 

몇 가지 의문들이 있다. 워너 아카이브 콜렉션에서 제공하는 자막과 일본 배우들이 말하는 일본어 대사 사이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일본어 대사는 함축적인데 반해 자막은 부연하는 편이다. 궁금한 점은, 미국 관객에게는 일본어 대사의 영어 자막이 제공되었는지, 그리고 일본어 대사는 어떤 식으로 쓰여진 것인지 (각본가들이 먼저 영어로 대사를 생각하고 그 후에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상황에 대한 설명만 듣고 일본인들이 대사를 쓴 것인지) 하는 것이다. 또 만약 전자라면 일본인 배우들은 영어판 대본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연기 지도를 받았을 지도 궁금하다. 다다미 칼싸움 장면의 연출은 오카자키 코조 촬영 감독의 지분이 크리라 짐작하는데, 슈레이더 형제나 다른 각본가들, 시드니 폴락 감독이 기획 단계에서 어느 정도까지 의도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더불어 타카쿠라 켄이 [인의 없는 전쟁] 이상으로 히트한 실록물 야쿠자 영화 [야마구치구미 3대째 (山口組三代目, 1973; 야마시타 코우사쿠)]와 이 영화를 거의 연달아 찍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도 들어보고 싶은데 (타카쿠라 켄은 1975년 토에이 퇴사 후 야쿠자 영화를 찍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들은 거의 마지막 야쿠자 영화에 해당한다.),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그걸 들을 길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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