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언더그라운드 타이틀 2개를 구입했다. 블루 언더그라운드 영화들은 대체로 DVDNetflix에서 블루레이 대여가 가능해서 최근에는 구입을 자제하려는 편인데, [스탕달 신드롬 (La Sindrome di Stendhal, 1996; 다리오 아르젠토)]는 DVDNetflix에서 대여하는 디스크는 2007년에 출시된 것으로 보이고, [Deathdream (1974; 밥 클락)]은 아예 dvd만 제공되고 있어 할인을 맞아 구매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감상한 [스탕달 신드롬]은...와, 이렇게 세심한 강간-복수극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다리오 아르젠토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서사에 관심을 두지 않던 아르젠토가 원작자의 서사에 의존했다는 평도 있던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각 예술로의 영화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의미를 갖는 장면들이 영화 전체의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연 배우가 아시아 아르젠토라는 사실이 감상자에게 (현시점에서 더더욱)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고. 이탈리아의 풍자적 사회파 영화가 떠오르는, 가부장 사회에 지독히도 냉소적인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철저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 이 영화를 가장 진보적인 강간-복수극의 하나로 평가하고 다리오 아르젠토의 숨겨진 걸작으로 생각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연구자 알렉산드라 헬러-니콜라스의 글을 몇 개 옮겨 보려고 한다. (헬러-니콜라스는 [스탕달 신드롬]을 보고 나서 강간-복수극의 비평적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아르젠토에게 완전히 진보적 혹은 퇴보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시도가 완전히 무의미함을 잘 드러낸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그러기에는 너무 모순적이다. 어쩌면 이는 아르젠토가 성적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날지 모른다. 나는 예전에 그의 강간-복수극 스탕달 신드롬 (1996)에 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그의 딸 아시아는 일련의 강간 사건을 수사하다가 그녀가 추적하는 가해자의 다음 희생양이 되는 경찰을 연기한다. 종종 강간을 착취적이고 자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곤 하지만, 나는 스탕달 신드롬이 미술사적, 영화적 전통을 결부시켜, 시각 예술에서 역사적으로 강간을 묘사하던 바로 그 표현 방식을 전략적으로 해체하는 영화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 영화는 놀라운 작품이며, 아르젠토의 가장 저평가된 작품이기도 하다.

"Suspiria (2015)" p.16

(...) 영화에서 안나 마니(아시아 아르젠토)는 현실과 재현된 이미지를 구분할 수 없게 하는 심리적 상태로 인해 고통받으며, (...)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강간을 그린 이미지들을 뚜렷하게 제시하면서, 아르젠토는 신화 속 강간 희생자에 대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묘사 그 자체가 재현으로의 폭력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안나는 광범위한 정체성들에 사로잡혀 있다: (...) 심지어는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가 연기한다는 영화 외적인 문제까지 고려하면, 감독의 딸이라는 정체성마저 내포한다. (...) 시각 예술의 역사 속에서 강간 묘사라는 행위에 수반되어 온 근본적인 모순을 노출시키고 와해함으로써, 아르젠토는 미학과 성적인 폭력의 문제적 교집합에 대한 복잡한 분석을 제시한다. 복수가 달성되는 부분의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스탕달 신드롬은 강간-복수극에 대한 자기 반영적인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The Violation of Representation: Art, Argento and the Rape-Revenge Film (2011)" p.1

아르젠토의 영화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재현을 내포하며, 특히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이분법이 불분명해지는 것은 그의 초기작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였다. 스탕달 신드롬은 한편으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강간-살해당하는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나 스타일 적으로나 영화가 기능하게 하는 ... [아르젠토의] 첫 3차원적인 여성 주인공"이 겪는 고난에 대해 엄청나게 동정하고 연민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

영화는 안나의 상황을 강간 생존자에 대한 허구화된 묘사에 대한 재현적 전통과 대비시킨다. (...) 이 전통에는 비단 그녀가 우피치에서 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강간을 소재로 한 그림뿐 아니라, 거친 톰보이나 요염한 팜므파탈 같은, 영화사에서 이들에게 허락된 배역 또한 포함된다. (...) 안나는 역사적으로 그녀에게 허락된 모든 가능성을 모색해보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적이지 않다. (...)

스탕달 신드롬은 어떻게 봐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며, 모두가 만장일치로 열광해야 할 영화라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간 이루어진 강간에 대한 재현의 전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스탕달 신드롬은 독보적이며 가치 있다. 이 맥락에서, 복수 파트는 - 집행 당시에는 관객과 안나에게 만족감을 주지만 -, 그녀가 승산 없이 재현적 장치를 상대로 벌이는 진정한 싸움에 비교하면, 시시하고 잉여로우며 거의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A Critical Study: Rape-revenge Films (2011)" p.18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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