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커피 (Coffy, 1973; 잭 힐)]나 [도베르만 형사 (ドーベルマン刑事, 1977; 후카사쿠 킨지)] 같이 만만치 않은 영화들을 보아서 이기도 하고, [부러진 화살 (Broken Arrow, 1950; 델머 데이브스)] 자체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아파치 부족과 미국 정부 사이의 평화 협정을 중재한 실존 인물 톰 제포즈를 다룬 영화인데, 두 가지 점에서 보는데 신경이 쓰였다. 톰 제포즈와 아파치 족 소녀 사이의 사랑이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인데, 실제 톰 제포즈를 연기한 제임스 스튜어트는 42세, 소녀 역을 맡은 데브라 패젯은 17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보기에 거북하다. 그리고 톰 제포즈가 이룩한 평화는 결과적으로 미국 측의 협정 위반으로 몇 년 지속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거슬린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꼽은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수정주의' 서부극과 고전 서부극의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 특히 감탄스러운 점은, "개념찬" 아메리카 원주민을 영화 전체의 작은 부분을 할애하여 보여주는 것을 면죄부로 삼는 영화들과 달리, 영화 대부분의 배경이 아파치 족 정착지이며, 이때 쉽게 빠지기 쉬운 오리엔탈리즘의 유혹마저 상당 부분 떨쳐냈다는 것이다. 코카시안 혈통의 배우 제프 챈들러가 분칠을 하고 전설적인 아파치 족 족장 코치스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텐데, 아파치 족은 백인과는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지극히 실리적이며 필요에 따라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이들로 그려진다. 

둘째, 나는 감독 델머 데이브스의 장기 중에서도 매력과 악함, 남성성과 냉혹함이 공존하는 인물들을 잘 묘사하고, 서로 대립하지만 닮아 있는 이들의 관계 맺기를 다루는 솜씨에 주목하는데, 앞서 지적한 점과 연관해서 이 영화 역시 이와 같은 기대를 십분 충족시켜준다.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역마차가 평화 협정에 동의하지 않는 아파치 족 소수파의 기습을 받아 궁지에 몰려 있는데 이 때 제임스 스튜어트가 아파치 족 전쟁 신호 연기(!)를 피우고, 이를 확인하고 구원하러 온 아파치 족과 함께 말을 타고 질주한다. 항상 불길함의 상징으로 쓰여 온 아파치 족의 연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는데, 서부극 애호가라면 벅차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며, 굳이 자의식을 품거나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서부극을 일거에 전복해 버리는 쾌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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