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쁘다. 아마도 11월초까지는 굉장히 바쁠 듯. 그래도 영화는 본다. 그 외의 여가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중이다.

2. 버트 레이놀즈 영화를 몇 편 사두고는 방치하고 있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표작 [스모키와 밴디트 (Smokey and the Bandit, 1977; 할 니드햄)]을 보았다. 엄청난 영화는 아니지만 기대보다 훨씬 좋았는데, 일단 이 영화를 통해 히트곡이 된 제리 리드의 컨트리 음악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고, 쓸데 없는 데로 빠지지 않고 오로지 애틀랜타에서 텍사스까지 왕복하는 여정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고, 욕심을 낸 카체이싱/카스턴트도 볼 만 하고, 무엇보다 버트 레이놀즈의 한없이 무해한 마초 캐릭터에 대단히 호감이 갔다. 패트리샤 히치콕의 회상에 따르면, 알프레드 히치콕이 말년에 '길티 플레져'로 여기며 즐겨 본 영화라는 점도 유쾌하다. 버트 레이놀즈 영화를 더 보고 싶다.

3. [나일강의 죽음 (Death on the Nile, 1978; 존 길러민)]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 시드니 루멧)]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편집도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중간에 신전에서의 살인 미수 장면 같은 건 긴장감이 너무 없고 동선도 어색해서 좀 심하다 싶은 수준이며, 플롯도 꽉 짜여진 느낌이 없다.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오리엔트...]에 못지 않은데, 미아 패로와 매기 스미스 정도를 제외하면 [오리엔트...] 마냥 짧은 출연 분량으로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는 인상까지는 없다. 혹평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실랑이를 벌이는 베티 데이비스와 매기 스미스 콤비나 몇 번이고 반복되는 살인 장면의 재구성 같은 건 재밌다. 올해 기억에 남는 영화들에 나오는 데이빗 니븐이나 조지 케네디도 반갑고. 풍경과 의상을 보는 맛도 훌륭하다. 돈과 시간을 들인 값은 충분히 하는 영화다. 하지만 이 다음 작품들은 이 영화보다도 평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무리해서 찾아보지는 않으련다. 

4. [체인질링 (The Changeling, 1980; 피터 메닥)]은 다시 보고 싶다. 대단한 연출 솜씨에 감탄하면서 중반부까지 봤는데 (혼이 나갈듯한 강령회 장면이나 휠체어의 활용 같은 건 정말이지!), 중반부 이후의 전개가 예상과는 완전히 달라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스테리를 풀고 원혼을 달래는 방식의 이야기가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닌데, 내가 기대한 건 아예 주인공이 미쳐가는 이야기 아니면 가족을 잃은 아픔이 좀 더 강조되는 이야기였기에 후반부를 100%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우물 파는 장면을 부감 숏으로 잡은 건 무척 만족스러웠다. 

5. [피핑 톰 (Peeping Tom, 1960; 마이클 파웰)] 마음에 쏙 드는 걸작이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 (A Matter of Life and Death, 1946; 마이클 파웰 & 에메릭 프레스버거)]의 마이클 파웰이 이런 음습하고 갈 때까지 가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싶다가도 [검은 수선화 (Black Narcissus, 1947; 마이클 파웰 & 에메릭 프레스버거)]의 마이클 파웰이라고 하면 납득이 간다. 심지어 [삶과 죽음의 문제] 역시 초반에 천국으로 전사자들이 몰려드는 장면은 유쾌함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좀 오싹한 데가 있었지. 굴절된 논리를 흔들림없이 (또는 흔들림을 극복하고)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을 주저하지 않고 담아내는 영화들은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같은 해 미국에서 나와 종종 비교되는 [싸이코 (Psycho, 1960; 알프레드 히치콕)]과 비교하면 이 쪽이 훨씬 매혹적이지 않나? 뭐 나는 [싸이코]보다 [싸이코2 (Psycho 2, 1983; 리처드 프랭클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싸이코]를 변변찮은 영화라 치부한다고 오해하면 곤란하지만. [로드게임 (Roadgames, 1981; 리처드 프랭클린)] 빨리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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