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에 앞서 제목에서 두 가지 언급할 점: 첫째, '신작'의 기준은 Letterboxd 기준 2017, 2018년 개봉작. 2017년을 포함하는 이유는 영화제 등을 이유로 개봉만 2017년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 내 기준으로는 2018년 신작으로 간주해야 할 작품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신작을 따로 체크하는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내가 리스트에 꼽을 영상물의 대부분이 (검증된) 오래된 영화들일텐데,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 즐거움 또한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 둘째, 영화가 아니라 굳이 '영상물'로 적은 이유는 리스트에 들어간 한 작품 때문. 

10. [서던 리치: 소멸의 땅 (Annihilation; 알렉스 갈란드)], 극장관람

고립된 극한의 환경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며 갈등을 빚는 탐사대라는 설정은 특별할 것 없지만, 그 전원이 여성이고 (좀 CG 티도 나긴 하지만) 극한의 환경을 매혹적으로 그려내며 영화관에서 감상하면 독특한 음향까지 더해져 굉장히 신선한 체험이 된다. 바로 아래 작품도 그렇지만 왜 이런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가 되었는지. 탐사대 팀장이 제니퍼 제이슨 리라 가산점.

9.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Peter Ramsey, Robert Persichetti Jr., Rodney Rothman)], 극장관람

점점 더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해져만 가는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이런 보물이 나올 줄이야. 미국 히어로 코믹스는 그 특성상 스토리 자체보다는 다양한 캐릭터 해석과 변주가 흥미로운 경우가 많은데, 그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니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코믹스의 표현 양식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실사 영화와 다름을 온몸으로 어필하는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내 취향. 

8. [로마 (Roma; 알폰소 쿠아론)], 극장관람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싶어 민망스러운 장면(산불나는데 노래부르는 장면이라던가)도 있긴 한데, 카메라 움직임과 Dolby Atmos 음향을 정교하게 활용하여 대단한 현장감을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인상깊었다. 좋은 시설의 극장에서 보아서 그런지 그 시도들이 성공적이라 느껴졌고. 그러니까 이게 왜 넷플릭스...

7. [안나와 종말의 날 (Anna and the Apocalypse; 존 맥페일)], 극장관람

뮤지컬인데 노래 훌륭하고 안무 좋은데다가 인물들에 충분히 공감과 연민,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좀비 영화다. 뭘 더 바래?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에드가 라이트, 2004)] 아류작 정도로 치부하는 평들도 있던데 그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뮤지컬을 좀비 영화에 잘 결합한 시점에서 이미 자기 영역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거 아닌가. 

6. [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 폴 토마스 앤더슨)], 극장관람

비키 크립스가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못 올라간 건 아카데미가 두고두고 욕먹을 일이다. 결혼 생활의 정수를 예리하게 포착하낸 아름다운 소품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여성 인물(들)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작품 전체에 행사하는 일도 드물어,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혹시라도 여성 단독 주연 영화 같은 거 나오는 거 아냐? 

5. [99번 수감동의 싸움 (Brawl in Cell Block 99; S. 크레익 잘러)], 아마존 프라임

억누를 때와 터트릴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장르 영화를 보는 건 끝내준다! 

4. [맨디 (Mandy; 파노스 코스마토스)], 극장관람

종잡을 데 없이 장면마다 마구마구 폭주하는 영화인데, 그 폭주의 에너지가 묘하게 한 방향으로 집중되어 산만하지 않고 대단한 흐름이 된다. 이 폭주를 소화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찬사를. 이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 감상하니 정말 상쾌했다. 가히 올해 최고의 극장 경험 1호로 꼽을 만 하다. 

3. [힐 하우스의 유령 (The Haunting of Hill House; 마이크 플래나간)], 넷플릭스

나는 2시간 내외의 실사 영화를 기준점으로 두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볼 때 실사 영화와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제공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보는데, [힐 하우스의 유령]은 "왜 드라마인가?"라는 물음에 충실히 답한다. 과거의 비극적이고 끔찍한 경험이 인물들의 현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사려 깊고도 모든 인물에 대한 존중을 담아 그려내는데, 한두 인물에게 이입하게 하는 영화는 적지 않지만, 모두 서로 다른 양상의 반응을 보이는 '크레인 가족' 전체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10시간 내외의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대단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단독으로 훌륭한 비극을 완성하는 5화나 야심차게 기술적 성취를 뽐내는 6화(대체 세트 설계나 연기 및 동선 지도-특히 아역들의-를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는 특히 인상깊었다. 

2. [복수 (Revenge; Coralie Fargeat)], 극장관람

올해 최고의 극장 경험 2호. [맨디]와 달리 전혀 무엇을 볼지 준비되지 않은 (나 포함) 관객들 사이에서 봤는데 이건 이거대로 무척이나 유쾌했다. 장르의 틀은 유지하면서 포커스를 여성에게 맞추어 "강간"-복수극이 아니라 강간-"복수"극을 만든 아이디어도 좋고, 단순히 도식적인 전복에 그치지 않고 작품 구석구석에 이를 야무지게 활용하여 대단한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독특한 액션 장면들을 하나도 아니고 여럿 만들어내는데 아이고 감사합니다. 

1. [제일개혁교회 (First Reformed; 폴 슈레이더)], 극장관람 

종교와 테러리즘, 이데올로기, 모순적인 열정에 대해 이토록 고통스럽고 진지하게 다루면서, 장면 하나하나의 '숭고함' 또한 대단한데, 상징주의나 형이상학으로 치닫지 않고 두 발을 현실에 단단히 붙이고 있는 걸작을 평생 여기에 천착한 폴 슈레이더 아니면 누가 만들겠냐 싶지만 그걸 '2018년의 폴 슈레이더'가 만들었다는 건 일종의 기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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