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바의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 (5 Bambole Per la Luna d'Agosto, 1970)〉는 애거서 크리스티의『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1939)』에 바치는 오마주 같은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총체적 난국이다. 10명이나 되는 등장 인물들은 영화의 3분의 1이 지나가도록 누가 누군지 구분조차 어려우며 (에드위지 페넥이 나와서 그녀를 길잡이 삼을 수 있었던게 다행이었지!), 앞뒤가 맞지 않아 이들이 대체 무슨 의도로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자연스레 인물이 죽어나가도 전혀 긴장감이 없으며 사건의 전개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결말조차 해괴하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즐겁게 보았다. 이 아수라장에서 바바 특유의 뻔뻔하리만치 과감한 카메라 워크와 휘황찬란한 미장센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시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핑계로 (여성의 경우 나체에 가까운) 희생자들을 비닐백에 담아 밧줄로 묶어 냉동 창고에 도축된 소들과 함께 매달아 둔 광경을 태연하게 담아내는데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인물이 죽어나가도 조금도 생기지 않는 긴장감을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낸다. 물론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것이 느껴지고 모든 장면이 좋은 건 아니지만, 간혹 드러나는 바바스러운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절망적인 각본이나마 계속 이어졌으면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2시간 내내 별다르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특별히 인상적인 순간도 없이 흘러가는 로튼토마토 90% 짜리 '깔끔한' 2016년 영화들과는 비교하는게 미안할 정도로, 보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덜커덩거리지만 여전히 빛나는 몇몇 장면을 선사하는 이런 영화들이 사랑스럽다.


※자켓 이미지를 제외한 이미지는 diaboliquemagazine의 Kino판 리뷰에서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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