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전투가 테마인데 표지에 저 생뚱맞은 카일로 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개봉에 맞추어 출시된 게임이라 그렇다.


영화 감상을 제외하면 나의 가장 큰 취미라 할 만한 것이 보드 게임이다. 미국에 온 이후 보드 게임을 즐기는데에 장단점이 있는데,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이 곳에는 파티용 게임 이상의 보드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아내와 할 수 있도록 2인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 일종의 단점이다. 


예전에는 푸에르토리코나 아그리콜라 등 주사위/카드 뽑기 등 운에 대한 의존이 낮고 정교한 게임 메커니즘과 밸런스를 자랑하는 게임들을 좋아했는데, 요새는 시스템에만 집중하여 예의상 테마를 덧씌운 게임이 아니라 (예를 들어 푸에르토리코의 경우 식민지 경영이 테마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테마를 시스템에 잘 반영해내는 게임에 관심이 간다. 


[리스크: 스타 워즈]는 〈스타 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Star Wars: Episode 6 - Return of the Jedi, 1983)〉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엔도 전투를 테마로 하고 있다. [리스크 (Risk)]는 고전 중의 고전 보드 게임으로 주어진 나폴레옹 시대 풍의 병력을 활용하여 주사위로 전투를 벌여 전세계를 정복하는 게임이다. 그렇다고 시대 고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시작 위치나 병력 구성 등이 실제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고 게임이 단순하여 한 판만 해봐도 질리기 쉽상이다. 보드 게임 팬들 중에는 [리스크]를 싫어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으며, 눈치챘겠지만 나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리스크]의 전투 시스템을 일부 차용하고 있는 [리스크: 스타 워즈]는 놀랍게도 영화에서 묘사된 엔도 전투를 멋지게 재현해낸다. ("It's a Trap!"의 바로 그 전투다.)


전체적인 초기 세팅.


우주전 초기 세팅. 제국과 반란 연합의 전력은 얼추 비슷해 보이지만, 제국군은 사진 우하단에 위치한 스타 디스트로이어에서 무지막지한 양의 타이 파이터를 충원할 수 있다.


타이 파이터 모양을 한 게임 판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 원형 우주 공간은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영역으로 은하 제국과 반란 연합 우주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진다. 은하 제국은 반란 연합 우주군을 전멸시켜 게임에서 승리하며, 반란 연합은 '물론' 게임 판의 정중앙에 위치한 데스 스타를 파괴해서 승리한다. 승리 조건이 다른 만큼 초기 배치나 전력 역시 반란 연합이 명백히 불리하며 함대전에서 정면으로 맞붙어 승리를 거두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사위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엔도 지상전. 반란 연합은 주사위를 굴려 해당 칸에 쓰여진 숫자 이상 나오면 앞으로 진군하며, 제국군은 스톰 트루퍼 타일을 배치하여 반란 연합의 진군에 필요한 주사위 숫자를 올릴 수 있다.


타이 전투기 한쪽 날개에서는 엔도 행성의 지상전을 묘사하고 있다. 반란 연합은 방어막 생성기에 도달하여 데스 스타의 방어막을 해제해야 하며 그 전까지는 우주전에서 데스 스타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은하 제국은 스톰 트루퍼를 파견하여 반란 연합의 진군을 늦출 수 있다. 


숫자는 체력을 의미한다. 아버지보다 체력이 1많은 루크. 다스 베이더의 체력이 1~3 사이에 있을 경우 참회를 시키면 황제와 동귀어진한다.


반대편 날개에서는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전투가 벌어진다. 일대일 대결이라면 루크가 다소 유리하지만 가끔 황제의 포스 라이트닝이 루크에게 타격을 가한다. 만약 다스 베이더가 사망하면 반란 연합이 약간의 이득을 얻으며, 루크가 사망하면 (다스 베이더 사망 이후에도 황제가 루크를 죽일 수 있다! 테마에 완벽히 부합하는 설정.) 제국이 상당한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다스 베이더가 빈사 상태일 때 그를 라이트 사이드로 회개시키면 영화의 내용처럼 황제와 다스 베이더가 동시에 사망하며 반란 연합은 큰 이득을 얻는다. 


깔끔한 카드 디자인. 위쪽은 제국군, 아래쪽은 반란 연합의 카드이다.


게임 시스템은 단순하다. 제국과 반란 연합 플레이어는 이번 라운드에 플레이할 3장의 카드를 선택하여 보이지 않게 내려놓고 반란 연합 플레이어부터 번갈아가며 한 장씩 공개하여 카드의 기능을 수행한다. 카드에는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기능이 있어 이 중 하나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반란 연합의 경우 우주전(밀레니엄 팔콘/X-Wing/Y-Wing/B-Wing의 이동)/지상전(방어막 생성기로의 진군)/광선검 대결(루크의 공격/다스 베이더 회개시키기)에 관한 기능들이 있다. 여담으로 제국의 데스 스타는 반란 연합 함대 하나를 증발시킬 수 있는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확률은 5/9 정도로 도박적 요소가 강하다. 



스타 워즈의 팬이 아니라면 추천할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게임이지만, 스타 워즈의 세계에 관심이 있거나 〈제다이의 귀환〉을 본 직후에 플레이한다면 테마를 잘 살린 특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 시간도 부담이 없고 룰 이해도 쉬운데다가 가격에 비하면 함선들 피규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소장/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가 폭발해 일시 품절 상태이다.) 다만 주사위 빨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활용하여 반란 연합을 밀어 버리지 않고 쓸 데 없이 루크를 다크 사이드로 끌어 들이려는 뻘짓이나 하는 황제를 모두 함께 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 워즈 팬이라면 꼭 한 번 해볼만 하지 않나 싶다. 


인원수 : 2인 대결 (4인도 가능하지만 평이 그리 좋지 않음).

플레이 시간 : 30 ~ 45분.

장점 : 테마에 매우 충실함. 간단하지만 깔끔한 시스템.

단점 : 운적 요소 (주사위 빨) 강함. 반란 연합 쪽으로 쏠리는 밸런스. 

구매 : 한국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듯. 언어의 영향이 거의 없으므로 미국에서 구매해도 플레이에 지장이 없으며 가격은 아마존 기준 20불 초반. 데스 스타, 밀레니엄 팔콘, 스타 디스트로이어, 스톰 트루퍼를 고급스럽게 바꾼 블랙 에디션이 30불 초반대에 구매 가능하니 그 쪽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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