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카프라의 〈저승 갈 땐 두고 가야 한다오 (You can't take it with you, 1938)〉을 보았다. 음... 카프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측면만 극대화된 영화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옹호하고자 하는 정신과 비판하고자 하는 이념을 표상하는 인물들을 가지고 불공정한 게임을 벌인다. 돈밖에 모르는 자본가, 상류층 문화에 찌들고 걸핏하면 쉽게 기절하는 그의 부인, 꽉막힌데다가 제대로 된 세금의 사용처조차 말할 줄 모르는 세무원들을 그들이 비난받기 딱 좋을 상황에 몰아 넣은 후 공격하는 일은 이토록 용이하다. 게다가 그들에 상반되는 미국의 정신을 언급하며 열거하는 인물들 중에 에디슨이 있다니, 이쯤 되면 실소가 나온다.
주인공 커플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벌이는 일종의 소동도 불쾌하다. 점잖게 앉아 식사를 하다가 이 소동에 반응하여 히스테리에 가까운 소란을 일으키는 고급 레스토랑의 손님들을 "머저리들"이라고 까고 싶었겠지만, 실제로 민폐를 벌이고 나아가 식당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은 주인공이 아닌가?
이건 딱히 이 영화를 찝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나는 창작자가 옹호하고 싶은 인물들이 자유로움의 탈을 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며 (대개 희화화된 엑스트라인) 다른 등장 인물을 바보로 만들거나 당혹하게 하여 웃음을 주는 방식의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머리 끝까지 불쾌해진다. 최소한 상대방에게도 만회할 공정한 기회를 주거나 아니면 주인공들이 이러한 일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사려깊음없이는, 그게 인민주의든 자유로움이든 유년기로부터의 성장이든 그 어떤 종류의 메시지일지라도 익살로 포장하여 말하려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당위나 도덕이 아닌 효율의 문제이다. 대개 이런 영화들은 사회의 냉혹함이나 부정직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인간들에 주목하며 그들이 지닌 가치를 관객들이 다시 한 번 돌아보기를 호소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정작 이 가치를 대변하는 주인공들 외의 인간들에게 무심해지는 순간, 그들은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되는 사회와 별 차이가 없는 위치에 놓이기에 관객을 설득하려는 논리 자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순간 이후 그 어떤 미사여구도 일종의 도덕적 엘리트 주의자의 오만함과 편협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유독 이런 스탠스의 영화들을 못마땅해 하긴 하지만 그런 태도를 수정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두번째 만남이 이래서야 다른 영화들에 손을 댈 기분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덧) 그 많은 단점과 나이브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은하영웅전설」을 좋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트류니히트와 라인하르트를 대조하여 민주주의에 가장 불리한 혹은 모순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 둔 후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관철할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가 과연 이상적인 전제군주인지 (아니라 생각한다), 작가가 내린 답이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식의 설정이 독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