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자식 딸린 늑대》연작의 마지막 영화, 〈자식 딸린 늑대: 지옥으로 가자! 다이고로 (子連れ狼 地獄へ行くぞ! 大五郎, 1974)〉를 보았다. 

이 한 편은 설국(雪國)이 배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굳이 내가 사는 곳의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아 유보해두고 있었는데, 의외로 눈밭을 구르는 장면은 전체 영화의 1/4 가량에 지나지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연달아 보는건데 싶었다. 

이 연작의 3편 즈음부터 클라이막스에 약속한 듯 등장하는 일대다 액션에서는 적의 숫자를 무지막지하게 늘려 놓고 그들을 하나하나 도륙해가는 오가미 잇토의, 검술이라기 보다는 거의 고된 노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입이 벌어져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정교한 장면 설계 없이도 이런 식으로 영화적 감흥을 불러 일으킬 수 있구나' 하며 내심 감탄하던 차였다. 그러나 5편에 이르자 거듭되는 살육 장면 속에 클라이막스 장면이 3, 4편에 비해 무덤덤하게 느껴져 마지막 작품에서는 대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우려가 되기도 했다. 

아, 그런데 눈밭이라는 환경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액션이 이토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수십명이 칼을 빼들고 잇토를 향해 달려오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그 수십명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며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심지어 유모차-썰매를 이용한 설원 추격전 장면마저 연출하는데 식상함에 대한 나의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벌어지는 익숙한 일대다의 검술 대결 역시 발이 푹푹 빠지는 설원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에 앞서 몸부터 제대로 가누려고 아둥바둥하는 광경이 처절함을 한층 더했다. 그리고 실제로 배우들이 닌자, 승려, 사무라이 복을 입고 스키를 타는 액션 지도를 받고 와카야마 토미사부로는 유모차를 썰매로 개조해서 타고 다녔으리라 생각하니 얼마나 황홀한가! 몸에 가해지는 제약이 커지니 앞서 지적한 바 있는 배우의 '노동-검술'에서 오는 감흥이 극대화된 한 편이었다. 

클라이막스의 일대다 전투 외에도 이번 편에는 유달리 좋다고 느낀 장면이 많다. 바뀐 감독의 탓일까?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공을 들인 것일까? 길었던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영화로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일을 마치고 이후에 수습하는 (어떻게 수습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모습을 구구절절 보여주느니 이렇게 끝내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는 생각도 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