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만남 (An Affair to Remember, 195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 가려둔다.
〈잊지 못할 만남 (An Affair to Remember, 1957)〉은 듣던대로 아름다운 영화였고 특히 전반부가 그러했다. 두 주인공이 빌프랑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뉴욕에 도착하는 부분까지는 각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감격에 겨워 숨이 멎을 정도였다.
사실 후반부는 전반부만큼 균형있게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테리(데보라 커)가 니키(캐리 그랜트)와의 만남을 기피하는 이유를 지나치게 늦게 밝혀 영문을 몰라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밝혀진 이유 역시 납득을 하려면야 할 수 있지만 꽤나 억지스러워 속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후반부가 존재하기에 이 영화가 더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한다.
첫째로, 저런 억지스러운 이유를 가져다 붙여 둘의 만남을 지연시키고 갈등을 유발한 동기는 결국 마지막 장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이 탁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반부 못지 않게 대화를 엮어 가는 방식이나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 테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활용하여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고 이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좁혀 가는 연출, 그리고 그림을 이용한 회심의 클라이막스까지도 만족스러웠다.
둘째로, 후반부에 테리와 니키가 원래 사귀던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에 고개가 끄덕여졌기 때문이다. 손쉬운 방법은 그들을 현재 사랑에 빠진 상대방과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시켜 테리와 니키의 사랑에 도덕적, 이성적인 면죄부를 주는 것이지만 영화는 결코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테리의 연인과 니키의 약혼녀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테리와 니키를 깊이 사랑하며 별다른 흠결이 있는 인물들도 아니다. 심지어 가만 보고 있으면 테리와 니키가 이기적이고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마치 일부러 장애물들을 설정해놓고 두 주인공이 이를 돌파하여 그들의 사랑이 한 때의 불장난이 아니라 진정한 감정임을 입증하도록 시험하는 듯 하다. 극중 인물들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하면서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영화를 보면, 나도 그 영화를 보다 존중해서 대하게 된다. 덧붙이면 이 방식이 설득력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도 생각한다.
셋째로, 테리가 지도한 아이들이 합창하는 부분은 사실 좀 뜬금없는데 그냥 그 순간이 참 좋다. 그 장면은 전체 영화의 진행에 기여하는 바도 별로 없는 잉여의 시간이고 테리가 걷지 못함에도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으로도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지만, 테리와 아이들이 교감하는 순간이 만족스러워 (심지어 이 아이들은 노래부르는 딱 두 장면 외에는 나오지도 않는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여담이지만 이런 장점들이 빛을 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데보라 커를 비롯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에 있다고 보는데 이 영화의 오리지널인 같은 감독의 〈Love Affair (1939)〉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시놉시스를 보니 내용은 거의 똑같은 것 같은데. 그리고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1993)〉도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