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Gene Siskel Film Center에서 7월 내내〈My Journey Through French Cinema (Voyage à travers le cinéma français, 2016; Bertrand Tavernier)〉와 이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된 프랑스 영화들을 소개하는 기획을 진행중이다. 제목부터〈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하는 사적인 미국 영화 여행 (A Personal Journey with Martin Scorsese Through American Movies, 1995; Martin Scorsese)〉(이하 〈미국 영화 여행〉) 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간기의 프랑스 영화를 보며 자랐고 장-피에르 멜빌의 영화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이 유년기의 영화 경험부터 출발하여 유명한 영화인들의 작품과 일화들을 되짚어 가며 프랑스 영화 전반에 대한 회고를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크게 기대한 바가 '전간기와 나치 강점기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190분 영화의 3분의 2 이상을 가량을 여기에 할애해주어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장 르누아르를 시작으로 자크 베케르, 마르셀 카르네, 쥘리앙 뒤비비에 등의 감독들을 되짚은 뒤 장 가뱅이나 조셉 코스마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중간에 잠깐 졸았으니 놓친 이름들도 있겠다. 와, 그동안 너무나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졌던 세계에 이토록 손쉽게 발을 들여놓아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친절했다. 영화 내적인 특징 뿐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나 제작 환경에 대한 설명도 풍부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복원이 이루어진 작품들은 Gaumont과 Pathé의 협찬을 얻어 자료 화면의 품질이 굉장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 작품들의 자료 화면은 열악하다)

노파심에 언급해두자면 〈미국 영화 여행〉과는 달리, 이 시기의 영화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흥미가 전혀 없다가 이번 기회에 프랑스 영화를 접해보는 기회를 갖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지루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보다는 이미 열망은 있으나 뭐부터 봐야 하는지 통 감이 안오던 관객들에게 가뭄의 단비가 되어주는 영화다.

그런데 이후 1시간 동안 장-피에르 멜빌, 장-뤽 고다르, (매우 간략하게)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클로드 소테까지 언급하고 영화가 마무리되는 느낌이라 영 석연치 않던 차에 영화가 끝날 때에야 이 작품이 고작 시리즈의 1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어서 제작될 후속편들과 그와 연계해 소개될 영화들을 생각하면 아직 기대할 게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배가 다 부르네.

시카고 Gene Siskel Film Center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다음과 같은 9편의 영화를 묶었다. 이런 영화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다른 영화들도 많이 언급되었는데 (특히 자크 베케르) 재미없게 모범적인 선택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보존 상태도 좋고 대표성이 있는 영화들을 선정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찾아보니 이 영화의 미국 개봉을 맞아 미국내 다른 지역의 필름 센터, 시네마테크들에서도 유사하지만 구체적인 영화 라인업은 조금씩 다른 기획을 진행 중이다.

  • 〈위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 1937; Jean Renoir)〉
  • 〈새벽 (Le Jour Se Lève, 1939; Marcel Carné)〉
  • 〈게임의 규칙 (La Règle du Jeu, 1939; Jean Renoir)〉
  • 〈천국의 아이들 (Les Enfants du Paradis, 1945; Marcel Carné)〉
  • 〈황금 투구 (Casque d'Or, 1952; Jacques Becker)〉
  • 〈레옹 모랭, 신부 (Léon Morin, Prêtre, 1961; Jean-Pierre Melville)〉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éo de 5 à 7, 1962; Agnès Varda)〉
  •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 1965; Jean-Luc Godard)〉
  • 〈즐거운 인생 (Les Choses de la vie, 1970; Claude Sau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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