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근래 본 가장 멋진 작품으로 꼽고 싶다. 연말 베스트에 반드시 넣을 영화. 시각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또 한 편의 스릴러 [Wait Until Dark (1967; Terrence Young)]와 비교해 보았을 때, 물론 굉장히 지향점이 다른 영화이긴 하지만, 시야의 제한성을 영화적 장치로 활용하는데 있어 압도적으로 이쪽이 앞선다. [Wait Until Dark]에서 화면은 대개 롱샷으로, 관객은 범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드리 헵번 집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를 파악하며, 전능한 입장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오드리 헵번을 응원하게 된다. 반면 [See No Evil]은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카메라는 길을 걷는 누군가를 따라가는데 클로즈업으로 그의 웨스턴 부츠 혹은 몸통의 일부만을 보여주며, 간간히 방향을 돌려 그 거리에 있는 여러 사물들을 잡는데 이 사물들은 모두 폭력과 관계된 물건이며, 이것만으로 이 웨스턴 부츠의 주인이 심상치 않은 사람임을 보여주며 불안을 조성한다. 이러한 과격한 방식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영화 막판까지 관객은 범인을 웨스턴 부츠와 팔찌로만 기억하게 되며 이 지독하게 제한적인 프레임 때문에 범인의 현재 위치 또한 종잡을 수가 없다. 미아 패로가 방안에서 움직이는 장면들에서도 구도의 치밀함과 카메라의 정교한 움직임 때문에 카메라 밖의 상황을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는데, 잠깐잠깐 포착하는 일상적이지 않은 사물의 배치가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관객은 눈이 멀어 이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태평하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미아 패로를 보며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범인의 현재 위치가 불명확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연극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소에서 진행되는 [Wait Until Dark]와 달리, [See No Evil]에서는 시간을 들여 묘사한 공간을 적당히 사용한 후 이제 단물 다 뽑아 먹었다는 듯 과감히 다른 공간들로 이동하는데 이것도 좋았다. 한 장소의 가능성을 끝까지 탐색하는 영화가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고, 시각 장애인이 홈그라운드를 벗어날 때 느낄 암담함과 절망감을 한도까지 밀어 붙이는 악랄함이 좋았달까. 당연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고난의 정도 역시 [See No Evil] 쪽이 훨씬 지독한데, 똑바로 보이는 상태에서 이 모든 연기를 소화해낸 미아 패로의 이름은 당연히 패키지 표지에 제목 다음으로 큰 글씨로 박힐 만 하며, 그녀에게서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 Roman Polanski)]에 이 영화에 이거 멘탈이 남아나긴 하나 걱정된다.) 너무나 빼어난 영화를 봐서 기분이 다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