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erion 공홈 할인 기간에 구매한 타이틀들. 사실 지난 주에 도착했는데 바쁜 일이 있어 업로드가 늦었다. 상반기에 Criterion 할인을 건너 뛰어서 '이제서야 샀네?' 싶은 타이틀들도 있다. 

도착하자마자 [확대 (Blow-up, 1966; Michelangelo Antonioni)]를 보았다. 사진을 모두 도둑맞은 뒤 밤거리로 나서는 장면부터 사실 좀 맘에 안들었다. 노골적으로 영화의 방향성을 한 쪽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랄까. 민망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상징적이라는 말도 모자라 거의 직유법 스러운 장면들도 있고. 비단 이 영화 뿐만은 아니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행여나 관객이 '주제의식'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어 부연해서 강조하려는 영화들이 있는데, 강압적인 전지자가 영화 세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느낌이 들어 달갑지 않다. 

그러나 첫 110여분은 "역시 안토니오니"라는 말이 나올만큼 환상적이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한 방약무인한 사진 작가의 하루 행적을 뒤쫓는데, 별다른 서사 없이 보여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유일하게 줄거리라 여길만한 것이 공원에서 찍힌 사진을 되돌려 받으려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의 실랑이인데, 스튜디오로 돌아온 사진 작가를 찾아온 레드그레이브 (극중에서 배역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분명하지는 않다)와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팽팽한 성적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누가 장면의 주도권을 잡는가의 대결을 대담한 구도의 장면들에 담아내는데 물 흐르듯 연결된다. 그녀가 떠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사진의 인화 과정과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는 부분은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흡혈귀 (Vampyr, 1932; Carl Theodor Dreyer)]는 낫을 들고 서 있는 사람 스틸컷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본 영화다. 유성 영화이긴 해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20; Robert Wiene)] 같은 영화랑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완전 딴판이었다. 내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영화를 안 본 탓도 있고 해서 그런지 낯설었는데, 굉장히 느리면서 서사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모더니즘 영화 같았다. 책을 읽으며 흡혈귀에 대해 배워가는 부분 등에서는 조금 지루하고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으나, 주인공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여정을 통해 여관방에서 저택까지 도달하는 과정이나 흡혈귀로 변해가는 여인이 사람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장면 등은 멋졌다. 이 영화를 보기 직전에 [제럴드의 게임 (Gerald's Game, 2017; Mike Flanagan)]을 본 탓인지 몰라도 주인공이 여관에서 자고 있는데 잠겨 있어야 할 손잡이가 돌아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들어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오늘 자로 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가 종료되어 미국과 한국과의 시차가 달라졌으니 한국에서 구매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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