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결산을 쓸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으니 차라리 그 글에 들어갔을 법한 영화들을 개별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Kino Lorber에서 출시한 블루레이로 감상한 [엘머 갠트리 (Elmer Gantry, 1960; 리처드 브룩스)]는 버트 랭카스터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는 영화다. 엘머 갠트리는 사적인 욕망 때문에 부흥회 교단에 합류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주특기인 대중영합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부흥회의 성공에 몸 바친다. 갠트리는 부흥회의 메시지를 실제로 믿게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부흥회의 에너지에 취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여전히 부흥회를 욕망 추구의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는가. 갠트리가 부흥회를 타락으로 이끄는 것인가, 반대로 부흥회의 본질적인 속성이 갠트리 같은 이를 끌어들이는 것인가. 이 모순적인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버트 랭카스터만큼이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어찌나 어울리는지 노골적으로 부흥회 부류의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정작 부흥회의 광기를 그 한 몸에 체화하는 듯한 랭카스터의 설교 장면을 보면 어째서 사회 하류층들이 종교 행사에 매혹되는지 절로 이해가 갈 정도. 굳이 따지자면 랭카스터의 차분하고 절도있는 연기 쪽을 더 좋아하지만, [엘머 갠트리]의 연기는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랭카스터를 안정적으로 받아주는 배우들-랭카스터의 상대역이자 부흥회의 회의하는 리더인 진 시몬스는 물론이거니와 과학주의자인 기자 역인 아서 케네디와 진 시몬스를 보좌하는 목사 역을 맡은 딘 재거-이 있기에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이지.

랭카스터라는 배우가 가진 큰 장점은 사회의 밑바닥에 아무 거리낌없이 끼어들어 껄껄 웃으며 그들 모두를 미소짓게 하고 열광케 하는 소위 '노동자 배우'로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의 초반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아, 이건 버트 랭카스터만 믿고 보면 되겠네'라고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준 씬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 화질은 좋지 않지만 올려본다.

근데 그런 사람이 시칠리아 대귀족이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칼럼니스트를 그토록 멋지고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게 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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