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실망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헐리우드판 [전쟁과 평화]를 본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나의 전쟁과 평화는 이렇지 않아!'를 외치며 스스로 주연까지 겸해 만든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손색이 없게 "원작 재현 싱크로율"은 대단하며 이후로 만들어진 전쟁과 평화 영상물을 모조리 통틀어 가장 원작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평판이 높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소설 팬이라면 꽤나 만족하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형 전투 장면들도 숨이 막힐 정도로 장엄한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음악에 맞추어 전진하는 보병대의 뒤편 언덕으로 기병대가 돌진하는 장면 같은 걸 보면 [블루 맥스 (1966; 존 귈러민)]의 오프닝에서 행군하는 보병들 뒤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장면이 떠오를 지경. 복식이나 인테리어도 루키노 비스콘티 정도는 아니지만 공을 들였고 볼 만 하다.
그런데, 세 가지가 문제다. 첫째가 촬영이요 둘째가 편집이고 셋째가 나레이션이다. 먼저 촬영, 시네마스코프를 쓰는 방식이 너무 답답하다. 인물이나 풍경을 대놓고 클로즈업으로 잡아 폐쇄감이 강한데 이건 시네마스코프가 아니라 위아래가 잘려나간 1.85:1 처럼 느껴지고, 무도회 장면 같은데서 춤추는 주인공 남녀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동선을 가로막는 엑스트라는 왜 이렇게 많은가? 볼콘스키의 전쟁터와 베주호프의 연회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장면 같은 건 나름 편집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으로 숏과 숏이 안붙고 (그렇다고 일부러 안붙는 효과를 노리는 것은 결코 아니고) 납득할 수 없는 컷이 너무 많다. 게다가 7시간짜리 영화가 소설에서 그대로 따온듯한 뜬구름잡는 나레이션 범벅이니 아아. 나레이션이 영상을 다 잡아먹는다. 장엄함을 묘사하는데 부감으로 전진하는 쇼트가 효과적인 건 이해하겠는데 시종일관 이걸 쓰는데다가 컷도 없이 이어지고 거기에 형이상학을 논하는 나레이션이 입혀지면 절로 한숨만 나온다.
그렇다고 볼 가치가 없는 영화라는 건 아니고 눈여겨볼 구석이나 흥미로운 부분들도 많은데, 냉정히 말하면 7시간을 다른 영화'들'에 투자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