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는 총 284편의 영화를 보았고, 이중 처음 본 영화는 총 263편이었다. 284편 중 블루레이로 본 영화가 221편, 극장에서 본 영화가 43편, 스트리밍으로 본 영화가 19편, DVD로 본 영화가 1편이었다. 블루레이 레이블 중에는 Arrow 37편, Criterion 32편, Powerhouse 17편, Shout! Factory 13편, Warner Archive 10편 순으로 많이 보았다. 올해 처음 구독을 시작한 dvdnetflix를 통해 대여해 본 영화가 34편이라는 사실도 언급해둔다. 

어떤 식으로 영화를 결산할지 항상 고민된다. 덕분에 작년엔 결국 제대로 된 결산은 하지 못했다. 일전에 어딘가 쓴 적이 있는데 비록 78%의 영화를 물리 매체로 감상했지만 여전히 물리 매체를 완벽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대체로 할인 행사를 기다렸다가 구매하기 때문에 '올해의 타이틀' 같은 걸 꼽기도 민망하다. 그렇다면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는게 제일 그럴 듯 하다 싶지만 '가장 좋았던'의 기준이 너무 애매해서 보다 명확한 주제 하에 목록을 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흡족한 포맷이 나올 때까지 매년 새로운 걸 시도해보지 않을까 싶은데, 올해는 내맘대로 이런저런 주제로 영화들을 겹치지 않게 꼽아 보았다. 선정 후보는 letterboxd 기준 2016년까지 출시된 영화들 중 2018년에 처음으로 본 영화들. 

올해의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 올해의 박스세트로도 꼽고 싶은 Criterion의 [Dietrich & von Sternberg in Hollywood]에 수록된 모든 영화를 꼽고 싶다. 폰 스턴버그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디트리히 없이 성립하기 어려운 영화들이기 때문에 어느 하라를 뺄 수가 없다. 스크린 속 디트리히에게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아우라가 있어서, '열연'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데도 캬바레 가수던, 스파이던, 여황제던 무슨 역할을 맡더라도 좌중을 장악하는 존재감을 뿜어낸다. [금발의 비너스 (Blonde Venus, 1932)]같은 영화는 정신머리 없는 뒤죽박죽 플롯에 영화의 배경과 인물의 사회적 위치가 계속 바뀜에도 디트리히의 존재만으로 이를 모조리 납득시킨다. 굳이 따지자면 [불명예 (Dishonored, 1931)]와 [진홍의 여제 (The Scarlet Empress, 1934)]를 제일 좋아하는데, [모로코 (Morocco, 1930)]도 [상하이 특급 (Shanghai Express, 1932)]도 [금발의 비너스]도 놓치기 아깝다. 

올해의 감독

마이클 파웰. 많은 영화를 함께 한 프레스버거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올해 본 영화들 중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끝맺은 걸작 [피핑 톰 (Peeping Tom, 1960)]을 빼놓을 수가 없어서. [삶과 죽음의 문제 (A Matter of Life and Death, 1946)]와 [흑수선 (Black Narcissus, 1947)]을 통해 비로소 파웰&프레스버거 영화들을 진심으로 애호하게 되었다. 

올해의 순간

[건 크레이지 (Gun Crazy, 1950; 조셉 H. 루이스)].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많지만, 내가 꼽고 싶은 건 경찰의 추적을 피해 헤어지려다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도주극 영화들을 볼 때 인물들과 거리를 한참 두게 되어 감흥이 떨어지는 문제를 겪곤 하는데, [건 크레이지]는 여태껏 본 도주극 영화 중 첫번째로 꼽고 싶을 정도로 대단히 만족스러웠고, 그건 두 인물의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이 대단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올해의 노래


살인 장면의 기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지알로에서도 주인공도 아니고 희생자1의 죽음에 이토록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 [새끼 오리를 고문하지 마라 (Non si sevizia un paperino, 1972; 루치오 풀치)]는 풀치가 단순히 고어한 장면을 잘 연출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내내 링크한 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올해의 WTF

좋은 의미의 WTF. 뭐니뭐니해도 [리퀴드 스카이 (Liquid Sky, 1982; Slava Tsukerman)]다.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 1990; 데이비드 린치)]나 [Heart of Midnight, 1988; 매튜 채프먼)]도 만만치 않은 WTF인데, [리퀴드 스카이]는 막나가는 전개인 주제에 얄미울만치 야무지게 챙길 거 다 챙겨먹고 등장 인물의 운명과 선택이 애절하고 아련하기까지 해서. (나머지 두 영화가 그렇지 않다는 건 또 아닙니다.)

올해의 공포 영화

[그것이 따라온다 (It Follows, 2014; 데이빗 로버트 미첼)], 이렇게 끈끈하고 의리있는 인물들이 나오는 공포 영화라니! 시네마스코프를 활용하는 방법도, 음악도 다 좋았는데, 인물들에 대한 호감 덕분에 영화에 흠뻑 빠졌다. DVD로 출시된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국 슬립오버의 신화 (The Myth of the American Sleepover, 2010; 데이빗 로버트 미첼)]도 봤는데 이쪽도 인물들에 대한 존중이 돋보이는, 신인감독스러운 풋풋한 영화였다. [실버 레이크 아래서 (Under the Silver Lake)]는 언제 공개되는 거야? 사실 [악마의 밤 (Night of the Demon, 1957; 자크 투르네르)]가 영화도 대단히 잘 만들었고 패키지마저 훌륭한데, 이성적인 학자 캐릭터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영화는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머지는 특별한 설명 없이 리스트만 적어둔다. 내년에는 좀 더 풍성한 글이 될 수 있길.

올해의 필름 누아르: [추락한 천사 (Fallen Angel, 1945; 오토 프레민저)]

올해의 서부극: [발데스가 온다 (Valdez Is Coming, 1971; 에드윈 쉐린)]

올해의 범죄 영화: [찰리 배릭 (Charley Varrick, 1973; 돈 시겔)]

올해의 드라마: [겨울의 서늘한 정경 (Chilly Scenes of Winter, 1979; 존 미클린 실버)]

올해의 코미디: [모던 로맨스 (Modern Romance, 1981; 앨버트 브룩스)] 

올해의 트리오: [경찰이 도움을 청하다 (La polizia chiede aiuto, 1974; 마시모 달라마노)]의 마지막 도원 결의

올해의 아시아인 주연 영화: [붉은 기모노 (The Crimson Kimono, 1959; 사무엘 풀러)]

올해의 '미국' 영화: [추적 (The Chase, 1966; 아서 펜)]

올해의 이탈리아 영화: [가장 아름다운 아내 (La moglie più bella, 1970; 다미아노 다미아니)]

올해의 비스콘티: [순수한 사람들 (L'Innocente, 1976; 루키노 비스콘티)] 

그 외에 언급해두고 싶지만 딱히 어울리는 카테고리를 찾지 못한 영화들

[스탕달 신드롬 (La sindrome di Stendhal, 1996; 다리오 아르젠토)]

[야쿠자 (Yazuka, 1975; 시드니 폴락)]

[Ninth Configuration (1980; 울리엄 피터 블래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아니었다면 올해의 배우는 스테이시 키치.


2019년의 첫 영화는 [인도가 끝나는 곳 (Where the Sidewalk Ends, 1950; 오토 프레민저)]였다. 출발이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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