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발간된〈어둠 속으로(Into the Dark, 2016)〉는 필름 느와르 영화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여 2~4페이지에 걸쳐 개봉 당시의 인터뷰 기사나 비평, 현장의 반응 등을 발췌하여 사진 자료와 함께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으나, 어쨌든 이 책에 소개된 쟁쟁한 필름 느와르 영화들 사이에서 당당히 표지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살인자들〉이다. 


그런데 직접 감상한〈살인자들〉은 대단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가장 처음에 주인공인 버트 랭카스터의 죽음을 보여주고 이후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가는 형식을 택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비슷한 형식의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 1944)〉나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와 달리 과거의 이야기가 조금도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필름 느와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고독한 인물들이 욕망과 죄책감 사이에서 겪는 흔들림과 그 반동으로 나타나는 극단적인 행동들을 묘사하는데 탁월하며 나아가 인물들의 흔들림이 공명하고 충돌할 때 맛볼 수 있는 영화적 감흥이 각별하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물들이 행동에 나서는 동기와 결심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별 관심이 없으며 그보다는 충격적인 '이중 배신(double-crossing)' 구도로 플롯을 짜는데 온 힘을 쏟은 듯 하다. 어떤 면에서 근래 유행한 반전(反轉)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데, 반전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더욱 신경써서 연출해야 할 그 반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무덤덤해진달까. 이미 반전 지점에 이르러서는 관객의 흥미를 모두 잃고 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휘둘리는 장난감 말로, 여성은 그림에 그린듯한 팜므 파탈로, 일차원적인 모습을 보일 뿐이기에 그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결단을 내리고 파국을 맞는 지점들이 자명해보여 궁금할 이유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남성 주연 배우가 출연한, 필름 느와르의 거장 줄스 다신의〈잔혹한 힘(Brute Force, 1947)〉에서 인물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소개하는데 공을 들여 클라이막스의 폭동에 관객이 정서적으로도 이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과 대조할 만 하다. 


듣기로는 1964년에 돈 시겔이 리 마빈과 앤지 디킨슨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 동명의 영화가 훨씬 낫다던데, 이쪽에 기대를 걸어볼 수 밖에. 


영국 블루레이는 일반적인 한국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는 재생 안되는 것이 많으니 주의해야 함.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blu-ray.com에서 region을 확인해보고 region free 또는 region A를 지원해주는 타이틀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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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에서 테드 창의 중편〈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 1998)〉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 걸작을 읽은 모든 이들은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 언어학자가 헵타포드(칠족류)라 불리는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통해 인류와는 다른 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게 되는 이 중편의 매력은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헵타포드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체화한 듯한 소설의 시간 구성과 미지를 대하는 학자들의 접근 과정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묘사, 그리고 이 요소들이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선택(그것을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면)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먹먹한 감동을 선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다른 식으로 풀어낼 때 원래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거나 하다못해 원작의 주제를 담아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원작이 갖고 있는 세계관 혹은 아이디어 중 하나가 매력적이라면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혹은 그 아이디어를 살린 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무의미한 원작의 반복에 비해 그 편이 훨씬 생산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원작을 비슷하게 따라가며 그 주제를 담아내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원작과의 비교는 피할 길이 없다. 


오롯이 언어에 대한 탐구와 주인공의 딸의 삶의 궤적에 집중하는 원작을 2시간 분량의 대중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관객의 흥미를 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넣는 것은 역시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헐리웃은 도무지 이 이야기를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인류 전체의 화합과 각성에 연결짓고 싶어한다. 그 과정에서 (어리석은 정치가와 군인들에 대비되는) 주인공의 깨달음은 세계의 운명에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게 무슨 세카이계도 아니고 뭐하자는 건가. 전쟁 밖에 모르는 이들과 주인공의 대비를 강조하다보니 주인공의 동료 물리학자 이안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헵타포드와의 의사 소통에 기여하는 과정이나 세계 각지에서 같은 일을 수행하는 학자들과의 소통은 요식 행위로 전락하고, 헐리웃이 좋아하는 원맨쇼가 펼쳐진다. 게다가 주인공의 아치에너미(arch enemy)이 극도로 호전적인 중국 장군이라는데에 이르러서는 헐리웃의 중국에 대한 공포와 선입견이 이토록 심한 것이었나 싶어 실소마저 나온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 과정에서 영화가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건전한' 목적을 부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헵타포드어로 쓰여진 이 영화 최악의 대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테드 창이 담아내려 한 헵타포드의 숭고하게까지 느껴지는 선택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그들에 대한 비애와 존경의 마음 또한 송두리째 사라진다. 최후의 최후에 가서야 주인공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며 어떻게든 이를 만회해보려고 들지만 이안의, 헐리웃 영화의 마지막에 남녀가 석양을 바라보며 꼭 할 것 같은 상투적인 대사가 잔혹한 확인 사살을 잊지 않는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헵타포드어의 시각화는 상당히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에이미 애담스는 이 영화의 마지막 한 줄기 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정당화할만큼의 장점은 아니다. 그가 보았던 그대로의 각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거절한 봉준호가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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