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포스팅한 Slant Magazine에 이어 

DVD Savant에서도 2016 best 20 물리 매체를 꼽았다.


관심이 있다면 링크를 참조하길 바라며 나는 리스트 자체와 몇몇 타이틀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만 기록해둔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은 파란 색으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빨간 색으로 표기한다. 


1. Private Property, Cinelicious

- DVD Savant의 설명을 그대로 번역해보면 1959년에 나온, 할리우드 힐스에 사는 부유한 주부를 강간하려는 모략을 꾸미는 두 부랑자에 대한 심리드라마란다! 헐, 이것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지는데 그런 소재를 이토록 정밀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영화를 본적이 없다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2. The Executioner, The Criterion Collection

- 흥미롭긴 한데 블랙 코미디를 통해 정치 풍자하는 영화를 즐긴 적이 별로 없어 망설여진다.


3. Woman on the Run, Flicker Alley / Film Noir Foundation 

- 영국의 Arrow Academy에서 동일한 내용의 타이틀이 발매되어 있어 다음 Arrow 할인 기간에 구매할 예정  


4. Chimes at Midnight, The Criterion Collection


5. The Gang's All Here, Twilight Time


6. Carnival of Souls, The Criterion Collection


7. One-Eyed Jacks, The Criterion Collection


8. GOG 3-D, Kino Lorber ※자막 없음


9. Mill of the Stone Women, Subkultur ※독일 발매, 지역코드B, 자막 없음


10. L'Inhumaine, Flicker Alley


11. Paris Belongs to Us, The Criterion Collection


12. J'accuse, Olive Films


13. Cinema Exiles: From Hitler to Hollywood, The Warner Archive Collection ※DVD


14. The T.A.M.I. Show & The Big T.N.T. Show, Shout Select (Shout! Factory)


15. Dreams Rewired, Icarus Films ※DVD


16. On Dangerous Ground, The Warner Archive Collection


17. Pioneers of African-American Cinema, Kino Lorber


18. Gold, Kino Lorber


19. Blood Bath, Arrow


20. Garden of Evil, Twilight Time

- 큰 기대는 없는데 그래도 일단 서부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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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도 DVD Savant에서는 이외에도 추천하는 타이틀을 잔뜩 올려주었다. 

그 중에 관심이 가는, 혹은 여러 이유로 아직 손에 넣지 못한 타이틀들을 레이블 별로 정리하면, 

Arrow U.K. : The Human Condition, Too Late for Tears

Criterion Collection : Cat People, The American Friend, The Exterminating Angel, The Asphalt Jungle, Gilda

Kino Lorber : The Vikings

Olive Films : Strategic Air Command, Johnny Guitar (Olive Signature Edition), The Monster of Piedras Blancas

Twilight Time : Pretty Poison, Hush...Hush, Sweet Charlotte, Cutter's Way, Moby Dick, Cat Ballou

The Warner Archive Collection : Susan Slept Here, It's Always Fair Weather

기타 : Patterns (The Film Detective), The Wave (Magnolia Home Entertainment), La fievre monte a El Pao (Pathe France), Comanche Station (Exposive Media / Alive) ※독일/프랑스 


Comanche Station???????????? 내가 왜 이걸 몰랐단 말인가;;;

〈지금 쳐다보지 마(Don't Look Now, 1973)〉에 대한 글을 쓰고 문득 이전에 쓴 글이 떠올라 수정해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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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 할인 기간에 주문한 〈위험을 무릅쓰고(On Dangerous Ground, 1951)〉가 도착하여 즉시 감상하고 나니 고다르가 했다는 “영화는 니콜라스 레이이다”라는 말에는 어떤 이의도 달고 싶지 않다. 영화는 니콜라스 레이이다.


레이의 영화적 순간에 대한 창작력은 고갈될 줄을 모른다. 특히 대화 장면을 연출해내는데 있어 레이를 따라갈 사람은 많지 않다. 레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립적인 위치에 놓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레이의 영화를 볼 때 안온한 순간의 부재를 느낀다), 오고 가는 말들의 심층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흐름과 긴장, 충돌을 담아내며 때로는 훗날을 위해 이를 인물들의 마음 속에 쌓아두고, 적절한 때가 오면 가감없이 분출시킨다. 이때 레이가 잘 활용하는 요소들이 말하고 듣는 방식, 표정과 몸짓, 시선과 위치 이동, 그들이 대화 중에 사물을 만지는 손놀림 등이다. 감정의 표출이 발화의 형식을 택하지 않기에 비로소 다양한 함의를 내포하게 되며, 나아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방식 이외의 어떤 식으로든 정의내릴 수 없고 해석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오로지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염세주의적인 폭력 경찰 로버트 라이언이 도시의 어둠 속을 누비는 영화의 반절을 지나면, 용의자를 추적하다 설원 속의 저택에 도착하여 맹인 여인(아이다 루피노)를 만나는데 이른다. 그녀를 겁박하여 용의자가 있는 곳을 알아내려는 피해자의 아버지를 제지하고 그녀와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그녀에게 "감정"을 품게 되는 일련의 장면들에 넋을 잃었다. 이는 동정인가, 연민인가, 사랑인가 아니면 도시에서 자행했던 폭력의 순간에는 망각했던 죄의식이 뒤늦게 발현하는 것인가.  어느 하나의 해석으로 단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며 기어코 그 전부를 담아낸다. 아이다 루피노의 빼어난 연기와 레이가 연출해내는 두 인물의 심리적 교류(와 충돌) 덕에, 관객은 영화의 중반이 지나서야 갑자기 등장하여 납득이 안될 정도로 용의자를 감싸고 드는 그녀에게 당황해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라이언이 그녀에게 품는 감정에 (그것이 무엇이든) 공감하게 된다.


사실 이런 저런 설명을 붙여보지만 레이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들 앞에서는 그 어떤 묘사도 빛이 바랜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직접 보기를 권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감히 말하건데 그런 순간을 체험하는데 대한 갈망이 바로 내가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이며, 〈자니 기타(Johnny Guitar, 1954)〉에서 자경단이 난입하는 가운데 비엔나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히죽거리고 폭소한 자들과는 영화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만 100편을 훌쩍 넘는 영화를 보았으니 제법 많은 시간을 영화 관람에 할애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왜 영화를 보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하나의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본〈로그 원: 스타워즈 이야기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와 〈동백꽃 없는 아가씨 (La Signora Senza Camelie, 1953)〉를 같은 이유에서, 같은 기대감을 품고 관람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조금 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언제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일 것이다. 역시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나의 이성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영화 속에서 목격하고 체험할 때 영화에 시간을 아낌없이 퍼주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물론 책과 같은 여타 매체를 통해서도 이런 순간은 찾아오지만,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활자 매체의 경우 얼마나 큰 감흥을 주는가는 나 자신의 상상력이나 주관적인 체험의 기억을 얼마나 떠올리게 하는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강렬한 시청각적 자극에 의해 애초에 그런 뇌의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지를 넘어선다'는 표현은 시청각적 매체에 보다 적절하다고 보여지며, 나에게는 그 최전선에 영화가 있다. 


여기에서 "언제 영화는 이성적인 이해를 뛰어 넘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어떤 추상화된 이론이나 대표성이 있는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를 포기한다. 애초에 이런 작품들은 그런 범주화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다. 차라리 가장 최근에 이를 경험한 하나의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니콜라스 로그 감독의〈지금 쳐다보지 마 (Don't Look Now, 1973)〉가 바로 그것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줄거리는 단순하다. 비극적인 사고로 딸을 잃은 부부가 베네치아로 일종의 치유 여행을 떠난다. 아내(줄리 크리스티)는 죽은 딸이 보인다는 노부인 자매와 친해지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이를 사기로 치부하는 남편(도날드 서덜랜드)은 베니스의 여러 장소에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노부인 자매는 베네치아에 남편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아내에게 경고를 하지만 남편은 이를 무시하고, 이때 급작스런 사건이 생겨 아내는 베네치아를 떠나게 되는데 남편은 이후 아내와 노부인 자매를 먼발치에서 목격하고 이들을 찾아 베네치아를 헤맨다는 이야기이다. (결말 부분만은 생략한다.) 애초에 이 영화에서 플롯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부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는가"이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지만,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화적 감흥은 바로 이 영화가 서덜랜드의 이해를 넘어서는 순간'들'(그렇다, 이 영화에는 그런 장면들이 넘쳐난다.) 에 찾아온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남편이 초현실적으로 체험하는 예지의 순간들, 도대체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지조차 명료하지 못한 그 순간들을 니콜라스 로그는 색채와 이미지를 매개로 삼는 몽타주 기법을 통해 제시한다. 그 찰나에는 마비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못하고 이미지를 따라갈 뿐이며, 이 시퀀스를 다 보고난 후에야 간신히, 내 스스로가 영화 속의 서덜랜드가 된 마냥,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초현실적인 체험을 했음을 깨닫게 된다. 체험 그 자체가 신비로우며 이것이 지극히 익숙한 기법을 통해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명료한 스크린 앞의 이미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또한 불가해하다. 이런 영화를 만나고 나면 글의 두번째 질문을 넘어서 첫번째 질문에까지 이렇게 답하고 싶어진다. 바로 이 순간을 겪기 위해 영화를 본다고.


이 글의 제목 또한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이 물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미 충분하리만큼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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