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이 있으나 손이 잘 가지 않았고, 영화 감상글을 좀 더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어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한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긴 글을 쓰고 싶은 경우가 많지 않아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잡담을 적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2. 시카고의 유서 깊은 영화관 Music Box Theatre에서〈말라버린 꽃 (乾いた花, 1964; 시노다 마사히로)〉을 35mm 필름으로 보는 사치를 누렸다. 정확히 어떤 팟캐스트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Pure Cinema Podcast) 아무리 홈비디오 상영 환경이 좋아져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여전히 특별한 체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에 구구절절 공감한다. 단, '영화 감상 행위를 존중할 줄 아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존중하는' 관객들과 함께 할 경우에. 이미 Criterion 블루레이로 감상한 영화이지만, 역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본〈말라버린 꽃〉은 완전히 새로웠다. 

3. 여러 리뷰에서 강조하는〈말라버린 꽃〉의 '주제 의식'이나 인물들의 태도에는 자의식 과잉이라 민망한 데가 있다. 진짜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도박판의 분위기를 숨막힐 정도로 생생하게 담아내는 솜씨 (염불이나 주문에 가까운 딜러의 대사들, 도박꾼들의 시선과 눈빛을 잡아내는 방식, 모더니즘 회화를 보는 느낌마저 드는 화투패의 배치와 움직임, 타케미츠 토루의 기묘한 리듬과 박자의 음악), 그리고 '엇'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느닷없이 나오는 예상치 못한 구도의 쇼트들이다.  

4.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를 상영한 주최는 Music Box Theatre가 아니라 Chicago Film Society이고,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이들은 장편을 상영할 때 그들이 그 영화와 관련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을 하나 골라 먼저 상영한다고 한다. 대체로 같은 감독의 작품을 틀게 마련인데, 오늘은 무려 1961년에 캐나다에서 만든 단편을 상영했다. 일견 의아하겠지만 두 영화를 모두 아는 사람이라면 좋은 선정이라는데 납득할 것이라는 소개와 함께 영화가 시작했는데, 4분 짜리 단편의 초반부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 영상이라 링크를 남겨 본다. 

〈Dance Squared (1961; Rene Jodoin)〉

5. 오늘부터 6월 19일까지 Scream Factory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프리오더 중인 타이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타이틀이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 중인데, 따져보면 아마존에서 일반적으로 파는 가격보다 (고작) 1~3달러 가량 저렴하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지는데 그래도 이만한 할인도 잘 안하는 레이블이다보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있고. 날짜가 남았으니 조금 더 고민해볼까. 

6. Pure Cinema Podcast의 Code Red 에피소드를 들었다. 지금껏 들은 Pure Cinema Podcast의 에피소드 중 가장 미묘한 기분이다. 어렵지만 꿋꿋하고 소신있게 물리 매체 타이틀 제작을 이어가는 영세 제작사라니 당연히 응원하고 관심을 갖고 싶지만, 영어 자막이 없는데다가 심지어 원어 음성마저 어떻게든 영어 더빙으로 바꿔 수록하려는 회사라... 그렇다고 이들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닌데, 선뜻 타이틀 구매에 나서고 싶지도 않고, 복잡한 심정이다. 


영국 아마존에서 주문한 〈페노미나 (Phenomena, 1985)〉와 〈순수한 사람들 (L'Innocente, 1976)〉이 도착했다.〈페노미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첫 '못 만든 영화' 라는 평을 읽은 적이 있어 반쯤은 도전하는 기분으로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작품들은 소위 아르젠토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들이고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의 모든 영화를 좋아해왔기 때문이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e i suoi fratelli, 1960)〉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무척 거칠지만 비스콘티의 인물들은 로코 파(派)와 시몬 파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동안 내가 주목하고 좋아했던 것은 로코 파의 인물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루드비히 (Ludwig, 1972)〉를 보고 시몬 파(와 그에 대한 영화)를 이해하고 애정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비스콘티의 유작〈순수한 사람들〉이 어떤 영화인지, 로코 파인지 시몬 파인지 둘 다인지 알 길이 없으나, 마냥 기다려진다. 

예전부터 미국 아마존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있던 〈심연 (The Deep, 1977)〉을 다른 물건 사는 김에 함께 주문했다. 그냥 감독인 피터 예이츠랑 배우 재클린 비셋만 보고 가격도 저렴한데 밑져야 본전이지 하고 산 영화였는데 지금 보니 닉 놀테랑 엘리 왈라치도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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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6월 19일부터 7월 1일 또는 2일까지 있는 것으로 정했다. 

영상자료원에서 하는 나카히라 코우 전의 마지막 이틀을 볼 수 있네. 아무런 정보도 없는 감독이지만 일본의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활동해서 이름을 날렸다면 보나마나 개성이 강하고 볼 만 하겠지. 그 다음부터는 어떤 기획이 있는지 모르겠네. 

시네마테크 서울은 정확히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이 끝난 직후인데 흥미로운 기획이 있었으면. 

일반 극장 개봉작 중에는 〈엘르 (Elle, 2016)〉를 다시 볼 것이고, 〈옥자 (2017)〉도 봐야지. 그 외에는 아직까지는 특별히 기대되는 영화는 없네.

 

1. 이번 주부터 8월 중순까지 시카고에서 지내게 되었다. 시카고와 그 근교에 관심이 가는 영화관이 두 개 있다. 대학 영화관들도 멋진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지만 여름 방학 동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1) Gene Siskel Film Center : 시카고에서 가장 자주 찾게 될 영화관. 시카고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무척 좋고 명실상부 시카고 '예술'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영화관이다. 대략 한 달 간격으로 주제를 잡아 기획전을 하며 미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해외 영화들이나 새롭게 복원이 이루어진 영화의 소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번 달의 기획전은 리나 베르트뮐러, 다음 달은 장 피에르 멜빌(!). 그런데 다음 달 중순에 3주 가량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 속이 쓰리다. 

2) Music Box Theater : 진 시스켈 필름 센터가 현재 시카고를 이끌어간다면 이쪽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관. 그래서 누아르 시티: 시카고 같은 영화제를 주관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무성 영화를 소개하는 기획을 지속하는 점도 어울린다. 다만 단기간에 집중하여 기획전을 진행하기 보다는 몇 달에 걸쳐 드문드문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많아 조금은 정리가 두서없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의외의 발견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2. 집에서는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보지만 여름 동안은 그게 불가능하여 이번 기회에 스트리밍 서비스에 친숙해져 볼 생각이다. 어제는 〈제 3의 사나이 (The Third Man, 1949)〉을 보았는데 과시적일 뿐 효과적이지 못한 테크닉,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할 뿐 아니라 일관성마저 없어 보이는 인물들, '주제 의식'을 강조하려는 앞뒤가 맞지 않는 각본과 대사 등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기가 막히게 멋진 마지막 씬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었는데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인지 의아하다. 

3. 시카고에 머무르는 동안은 손에 넣은 타이틀 정리는 집에 가는 날 (일주일에 한 번씩 학업과 관련된 이유로 학교를 방문해야 한다) 포스팅할 계획이다. 

4. 덕 라이먼 감독의 〈벽 (The Wall, 2017)〉을 보았다. 이라크 전이 정리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적 저격수에 의해 부상을 당하고 허물어져 가는 벽 뒤에 고립된 미군 병사(애런 테일러-존슨 분)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노획힌 무전기를 이용해 말을 걸어오는 적 저격수와 주인공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데,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대화가 전개되는 양상이 흥미롭지 못하고 주인공이나 적 저격수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 80여분의 짧은 영화인데도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주변 지형이나 사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영화라면 어땠을까? 

5. 집을 떠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브뤼즈에서 (In Bruges, 2006)〉는 섣부르지만 올해 최고의 '기대 이상의 영화'로 꼽고 싶을 정도. 블랙 코미디로 알고 보았는데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틀린 말은 아닌데 생각지도 않았던 강직함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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