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discount의 올리브 필름 BOGO 행사에서 〈하이 눈 (High Noon, 1952)〉과 〈해니 콜더 (Hannie Caulder, 1971)〉를 손에 넣었다. 사실 진짜로 갖고 싶었던 건 〈그리즐리의 밤 (The Night of the Grizzly, 1966)〉과 〈맥베스 (Macbeth, 1948)〉였는데 둘다 이미 품절되었는지 팔지 않아 꿩 대신 닭이란 느낌으로 구매했다. 

버트 랭카스터와 데보라 커마저 구원하지 못한〈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에 몹시 실망한 이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영화에는 손이 가질 않아 아직도 〈하이 눈〉을 보지 않았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기분이 드는 영화라 구매했다. 영화가 의외로 맘에 든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영화가 예상대로라면 왜 긍정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해니 콜더〉는 이미 보았는데 아... 각오를 안한 건 아닌데 그 이상으로 불쾌한 영화였다. 남편을 잃고 강간당한 여성의 복수극인데 이 무거운 소재를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라켈 웰치의 연기, 그리고 그녀를 담는 카메라는 도무지 강간 피해자를 다룬다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기분 나쁜 것은 영화의 삼분의 일 가량이 강간살인마 삼형제의 해니와 재회하기까지의 행보를 우스꽝스럽게 그린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이 범죄자들은 여전히 불쾌하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구석도 있는 캐릭터들도 묘사되고야 만다... 이건 대놓고 착취적인 영화들조차 터부시하는 부분이지 않나? 애초에 강간-복수극에서 뭘 기대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미즈. 45 (Ms. 45, 1981)〉같은 훌륭한 영화도 있는 판에. 감독이 랜오운 서부극의 각본을 담당한 버트 케네디라 안심하고 봤는데 이렇게까지 기분 나쁠 줄은 몰랐다.〈코만치 스테이션 (Comanche Station, 1960)〉에서 강간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해 사려 깊게 접근하던 솜씨는 다 어디로 갔나. 

게다가 부록으로 제공되는 "Exploitation or Redemption?: An examination of rape-revenge movies"라는 12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남성 해설자가 몇몇 강간-복수극의 강간 장면 시점 묘사에 대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듯 시종일관 싱글벙글하며 설명을 하는데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그 표정만으로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감상을 중단했다. 착취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되며 나 역시 제법 고민하던 주제라 반가운 부록이었는데 이게 뭐야.

〈히트〉는 열광하며 본지 거의 10년 정도 지나서 구체적인 장면장면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흐릿한 기억에 의존해 볼 때 지금 다시 보면 "수컷의 고독"에 자아도취적으로 빠져 드는 민망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지만, 그래도 마이클 만 영화인데 재평가를 위해 3시간을 투자하는게 전혀 아깝지 않지.





이번 주에는 ebay 할인을 통해 구매한 타이틀 4개 + 영국 아마존에서 선배송된 타이틀 1개가 도착했다.

구매한 영화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Pure Cinema Podcast (이하 PCP)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아랫줄의 세 타이틀은 모두 PCP에서 추천 받았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출시되는 수많은 블루 레이들 중에 무얼 구매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는 나로서는, 매번 주제를 잡아 자신들이 좋아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영화를 소개 해주는 PCP의 실용성이 일단 마음에 든다. 영화를 소개하는 방식에도 주목할 만 하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면, 뜬구름잡는 듯한 고담준론을 읊으며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거나, 반대로 아예 IMDB Trivia에나 실릴 것 같은 신변잡기를 중심으로 소개하여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PCP에서는 영화의 특징적인 아이디어, 인상적이었던 장면, 좋아하는 배우 등을 흥분을 섞어 소개하기에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들과 맞아 떨어져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추천하는 영화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고답적이지 않고 유쾌하며 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깔 시간에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라도 더 소개하겠다는 식이라 긍정적이고 유익하다. 특히 Cult Movies 2000 and Beyond와 Rip-Offs 에피소드를 들으며 이들이 '구린' 영화를 허물없이 하지만 진심으로 즐기는 태도 (완성도와 개연성, 주제의식을 따지고 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는 감동마저 느껴지고, 닮고 싶었다. 게다가 두 참여자 Elric과 Brian의 발음까지 명확하여 아직도(!) 영어 청해력이 딸리는 나도 듣는데 무리가 없고. 추천작들이 어떤 매체(블루 레이, DVD, 아마존, NETFLIX 등)로 이용 가능한지 알려 주는 것도 고마운데 심지어 Brian이 운영하는 Rupert Pupkin Speaks 블로그에 추천작 목록을 정리하여 올려주기까지 한다. 

〈다윗과 밧세바 (David and Bathsheba, 1951)〉는 DVD Beaver의 캡쳐 이미지를 보고 바로 구매를 결심했다. 〈브뤼즈에서 (In Bruges, 2008)〉은 예전부터 관심은 있던 영화였는데 같은 감독의 최신작 예고편이 독특하여 망설임없이 구매. 〈제안 (The Proposition, 2005)〉은 PCP의 Cult Movies 2000 and Beyond 에피소드에서 생전 처음 들어본 호주 서부극이라는데 소개가 제법 흥미진진하게 들린다: 번스 갱단의 찰리 번스(가이 피어스)는 경찰로부터 동생 마이키와 자신의 사면을 대가로 9일 이내에 악명 높은 형 아서를 죽이라는 제안을 받고 형을 찾기 위한 길을 떠난다고 한다. 형제 간의 대결보다는 찰리의 여정과 그 여정이 펼쳐지는 호주 아웃백의 황량한 풍광이 주를 이루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는데 과연 어떨런지. 

〈그린 룸 (Green Room, 2016)〉은 PCP의 멤버 Elric이 2016년의 공포 영화로 망설임없이 꼽는 작품으로, 구매 직후 이미 감상했다. 푼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마음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네오 나치 계열 공연장을 찾은 밴드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본 후 공연장 내 밴드 대기실(그린 룸)에 고립되어 그들을 살해하여 증거를 인멸하려는 공연장 관계자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그린 룸은 외부와 차단되어 주인공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빠져나가야 하는 공간이며 두 상반된 측면이 번갈아 부각되어 영화의 리듬이 살아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소한 도구들조차 소중해지는데 그린 룸의 잠긴 문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협상을 벌이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슬래셔-고어 영화로 전환되고 나서도 영화의 힘은 떨어지지 않는데 심지어 기대치도 않았던 협업-액션의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마저 있다. 아쉽게도...

그러나 공간 자체의 구조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며 (관객이 쉽게 공간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고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갈 수 있다), 그 공간에서 전진하고 후퇴하는 움직임으로만 영화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요즘 흔치 않은 영화여서 반가웠다. 

〈거대한 열기 (The Big Heat, 1953)〉도 이번에 다시 감상했고, 할 말이 많은데 쓰다보니 길어져 그건 추후에 프리츠 랑에 대한 별도의 글로 작성하려 한다. 여담으로 Twilight Time에서 처음 내줬을 때의 앞표지가 가장 좋았고 재판시의 앞표지도 나쁘지 않은데 Indicator 판은 영 정이 안간다. 



북미 쇼핑몰 Deepdiscount에서 Olive Films B1G1 행사를 진행중. 대략 표준 Olive Films 블루 레이 한장에 $10, Signature Collection은 $14 가량으로 책정되었다. 한국까지의 배송은 거북이 배송으로 유명하며, 미국 내 주문은 $25 이상 무료 배송.

Olive Films는 자막을 넣어주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놓아 외면하고 있었는데, Signature Collection (요새 발매가 뜸하던데)과 영어 자막 추가 (흑백 영화의 경우 Warner Archive와 마찬가지로 노란색 자막이라 왜 사서 욕먹나 싶지만)로 요새는 좀 달리 보이는 레이블.

가장 싼 타이틀부터 할인이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판과 Signature Collection을 모두 구매할 경우 두 주문으로 나누어서 구매해야 함. 

참고로 이 행사는 작년에도 진행된 바 있다. 

덧) 빠른 속도로 재고 소진중. 물량이 바닥나면 backorder로 돌리던가 아니면 아예 항목을 삭제해버리는 것 같다. Signature Collection을 4개 주문하려다가 2개 밖에 구매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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