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매일 쓰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 같아 구매한 물건이 도착한 주 토요일에 일괄적으로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이번 주에 도착한 물품은 일전에 타겟 할인때 예약 구매한 <올해의 여성 (Woman of The Year, 1942)>, bullmoose 쇼핑몰에서 내일까지 진행중인 Arrow Film 블루 레이 할인 행사를 이용해 구매한 <언덕이 보고 있다 (The Hills Have Eyes, 1977)>와 <막장 자동차 극장 (Dead-end Drive-in, 1986)>.
<올해의 여성>은 스크루볼 코미디에 관심은 있으나 블루 레이 위주로 영화를 구매하고 싶은 나에게 너무나 반가운 한 편이다.
<언덕이 보고 있다>와 <막장 자동차 극장>은 사실 출시될 때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각각 거시다님의 월간 영화와 연간 영화 소개글에 마음이 동해 구매하게 되었다. 특히 새롭게 시작된 월간 영화 추천 기획(?)이 무척 반갑다.
〈잊지 못할 만남 (An Affair to Remember, 195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 가려둔다.
〈잊지 못할 만남 (An Affair to Remember, 1957)〉은 듣던대로 아름다운 영화였고 특히 전반부가 그러했다. 두 주인공이 빌프랑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뉴욕에 도착하는 부분까지는 각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감격에 겨워 숨이 멎을 정도였다.
사실 후반부는 전반부만큼 균형있게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테리(데보라 커)가 니키(캐리 그랜트)와의 만남을 기피하는 이유를 지나치게 늦게 밝혀 영문을 몰라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밝혀진 이유 역시 납득을 하려면야 할 수 있지만 꽤나 억지스러워 속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후반부가 존재하기에 이 영화가 더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한다.
첫째로, 저런 억지스러운 이유를 가져다 붙여 둘의 만남을 지연시키고 갈등을 유발한 동기는 결국 마지막 장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이 탁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반부 못지 않게 대화를 엮어 가는 방식이나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 테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활용하여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고 이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좁혀 가는 연출, 그리고 그림을 이용한 회심의 클라이막스까지도 만족스러웠다.
둘째로, 후반부에 테리와 니키가 원래 사귀던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에 고개가 끄덕여졌기 때문이다. 손쉬운 방법은 그들을 현재 사랑에 빠진 상대방과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시켜 테리와 니키의 사랑에 도덕적, 이성적인 면죄부를 주는 것이지만 영화는 결코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테리의 연인과 니키의 약혼녀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테리와 니키를 깊이 사랑하며 별다른 흠결이 있는 인물들도 아니다. 심지어 가만 보고 있으면 테리와 니키가 이기적이고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마치 일부러 장애물들을 설정해놓고 두 주인공이 이를 돌파하여 그들의 사랑이 한 때의 불장난이 아니라 진정한 감정임을 입증하도록 시험하는 듯 하다. 극중 인물들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하면서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영화를 보면, 나도 그 영화를 보다 존중해서 대하게 된다. 덧붙이면 이 방식이 설득력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도 생각한다.
셋째로, 테리가 지도한 아이들이 합창하는 부분은 사실 좀 뜬금없는데 그냥 그 순간이 참 좋다. 그 장면은 전체 영화의 진행에 기여하는 바도 별로 없는 잉여의 시간이고 테리가 걷지 못함에도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으로도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지만, 테리와 아이들이 교감하는 순간이 만족스러워 (심지어 이 아이들은 노래부르는 딱 두 장면 외에는 나오지도 않는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여담이지만 이런 장점들이 빛을 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데보라 커를 비롯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에 있다고 보는데 이 영화의 오리지널인 같은 감독의 〈Love Affair (1939)〉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시놉시스를 보니 내용은 거의 똑같은 것 같은데. 그리고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1993)〉도 보고 싶네.
드디어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자식 딸린 늑대》연작의 마지막 영화, 〈자식 딸린 늑대: 지옥으로 가자! 다이고로 (子連れ狼 地獄へ行くぞ! 大五郎, 1974)〉를 보았다.
이 한 편은 설국(雪國)이 배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굳이 내가 사는 곳의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아 유보해두고 있었는데, 의외로 눈밭을 구르는 장면은 전체 영화의 1/4 가량에 지나지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연달아 보는건데 싶었다.
이 연작의 3편 즈음부터 클라이막스에 약속한 듯 등장하는 일대다 액션에서는 적의 숫자를 무지막지하게 늘려 놓고 그들을 하나하나 도륙해가는 오가미 잇토의, 검술이라기 보다는 거의 고된 노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입이 벌어져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정교한 장면 설계 없이도 이런 식으로 영화적 감흥을 불러 일으킬 수 있구나' 하며 내심 감탄하던 차였다. 그러나 5편에 이르자 거듭되는 살육 장면 속에 클라이막스 장면이 3, 4편에 비해 무덤덤하게 느껴져 마지막 작품에서는 대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우려가 되기도 했다.
아, 그런데 눈밭이라는 환경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액션이 이토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수십명이 칼을 빼들고 잇토를 향해 달려오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그 수십명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며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심지어 유모차-썰매를 이용한 설원 추격전 장면마저 연출하는데 식상함에 대한 나의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벌어지는 익숙한 일대다의 검술 대결 역시 발이 푹푹 빠지는 설원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에 앞서 몸부터 제대로 가누려고 아둥바둥하는 광경이 처절함을 한층 더했다. 그리고 실제로 배우들이 닌자, 승려, 사무라이 복을 입고 스키를 타는 액션 지도를 받고 와카야마 토미사부로는 유모차를 썰매로 개조해서 타고 다녔으리라 생각하니 얼마나 황홀한가! 몸에 가해지는 제약이 커지니 앞서 지적한 바 있는 배우의 '노동-검술'에서 오는 감흥이 극대화된 한 편이었다.
클라이막스의 일대다 전투 외에도 이번 편에는 유달리 좋다고 느낀 장면이 많다. 바뀐 감독의 탓일까?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공을 들인 것일까? 길었던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영화로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일을 마치고 이후에 수습하는 (어떻게 수습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모습을 구구절절 보여주느니 이렇게 끝내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는 생각도 든다.